이미지 크게보기 프라다 마파, 미카엘 엘름그린&잉가르 드라그세트, 4.6×7.6m, 2005 설치.

프라다, 2005 컬렉션 제공
백·구두 도난… 건물파손…
기구한 운명거치며 폐허로

흔히 멀고 가기 힘든 곳을 산 넘고 물 건너간다고 하지만 서울에서 가자면 대개는 12시간 가까이 걸리는 로스앤젤레스(LA)까지 가서 다시 엘패소나 미들랜드행 비행기로 갈아타야 한다. 그러나 여기가 끝이 아니다. 어느 곳에서 내리더라도 2시간 반 가까이를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 아니 사막 위를 렌터카를 운전해 달려야 한다. 그렇게 달리다 보면 마파라는 지역에 밸런타인이라는 작은 마을이 나오고 그 사막 한가운데 생뚱맞게 프라다 매장이 나타난다. 여기가 바로 프라다 마파(Prada Marfa)다. 인구가 2000명 남짓한 텍사스의 사막 한가운데 프라다 매장이라니. 과연 장사가 될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이것은 미술 작품이니까.

이 프라다 매장이 문을 연(?), 아니 문을 열어본 적이 없는 매장이 들어선 것은 2005년 10월이다. 예전 삼성본관 빌딩에 있던, 삼성문화재단이 운영하던 플라토에서 2015년 전시를 한 바 있는 덴마크 출신 미카엘 엘름그린(Michael Elmgreen·1961~)과 노르웨이 출신의 잉가르 드라그세트(Ingar Dragset·1969~) 듀오의 작품이다. 이렇게 생뚱맞은 작품을 우리는 데페이즈망(Depaysement)이라고 부르는데, 바다에 있어야 할 생선을 등산을 하면서 뜻하지 않게 만나게 되는 생경함 같은 ‘뜻밖의 만남’을 통해 관객을 놀라게 한다. 이를 좀 잘난 체하는 표현을 빌리면 ‘탈맥락화’쯤 될 것이다.

이미지 크게보기 정준모 큐레이터·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아무튼 이 작품은 2005년 설치된 이후 지금까지 처음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다만 시간이 지나면서 낡고 쇠락해진 데다가 불어치는 모래바람에 생채기투성이지만 어떠한 보호조치도 없이 그냥 온몸(?)으로 세월과 자연 앞에 견디고 있다. 흔히 ‘팝 건축 대지예술’ 작품이라는 생소한 이름으로 분류되는 미술 장르의 작품이다. 규모가 35㎡ 정도로 작은 프라다 매장처럼 보이지만 절대 문이 열리지 않는다. 좌우대칭의 건물은 매우 정적이면서도 균일하고 정제된 느낌을 준다. 실제로 진열대 앞에는 가방이, 뒤편에는 구두가 진열돼 있다. 프라다는 자신들의 사업에 비판적인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2005년 가을·겨울컬렉션을 기꺼이 제공했다. 또 상표 사용도 허락했다. 그러나 실제로 이 작품의 제작비를 제공한 곳은 뉴욕에 본부를 둔 아트 프로덕션 펀드(Art Production Fund·APF)와 마파의 문화예술교육기구인 볼룸 마파(Ballroom Marfa)다.

제아무리 명품이고 사치품이라도 무한한 것은 없듯이 나그네가 서 있는 황량한 사막 한가운데서 인간이 취하려는 부나 권력 또한 그렇다는 다소 근대적인 관점에서 감상적인 작품 읽기를 부추긴다. 그리고 보통사람들이 기대하는 예술의 맥락을 뒤틀어 장소특정적 예술로 작품은 새로운 환경에 놓임으로써 의미가 달라지며 작가와 관객 모두가 기대하지 않았던 모순의 순간을 만나게 된다.

하지만 작품의 운명은 기구했다. 2005년 처음 오픈한 날 밤 건물의 일부는 부서졌고 6개의 핸드백과 14개의 구두가 도난당했다. 게다가 누군가 ‘벙어리’(Dumb), ‘둠 둠’(Dum Dum) 등의 글을 스프레이로 휘갈겨놓았다. 하지만 이내 수리돼 가방은 바닥이 없는 것으로 대체됐고 도난방지시스템을 구축했다. 이 사건은 사막의 프라다 매장을 더 유명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다시 2014년 3월 건물은 푸른색 페인트가 칠해지고 톰스 슈즈(Toms Shoes)의 가짜 로고가 선가드 어닝에 새겨지고 문에는 정치적인 선언문이 적혔다. 32세의 범인은 이내 잡혔고 배상금과 벌금을 물어내야 했다.

2013년에는 성인잡지 플레이보이가 작가 리처드 필립스(Richard Phillips·1962~)에게 의뢰해 만든 작품이 이 근처에 세워지면서 둘 다 ‘허가받지 않은 광고물’ 취급을 받아 교통부에 의해 철거 위기에 처했으나, 프라다의 의뢰 없이 작가 스스로 만들었다는 점이 참작돼 미술품으로 인정받아 철거 위기를 면했다. 하지만 이제는 세월의 켜가 쌓여 바닥이 없는 가게 안은 죽은 거미와 벌레들로 가득한 폐허가 돼가고 있다. 아니 폐허가 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 작가의 의도다.

큐레이터·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