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쏠린 눈 12일 오전 서울역을 찾은 시민들이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에 앞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악수하는 장면을 지켜보고 있다. 김선규 기자 ufokim@

- 美北 정상회담 열리기까지…

평창올림픽때 北 “대화 용의”
폼페이오 訪北으로 급물살

北, 5월 납북 미국인 3명 석방
美, 北과 정상회담 공식 발표
北 “펜스, 아둔한 얼뜨기” 비난
격분한 트럼프 “회담 취소”

北, 즉각 대화 재개 요청
美, 수용뒤 실무회담 착수

전쟁 일보 직전까지 내몰린 한반도 정세 속에서 97일간의 ‘반전 드라마’가 진행된 끝에 12일 사상 최초로 미국과 북한 정상이 한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이날 열린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에 대한 논의는 2월 평창동계올림픽에서 시작됐다. 2월 25일 폐막식에 참석한 김영철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이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 “미·북 대화를 할 충분한 용의가 있다”고 밝혔고, 이어 북한을 방문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만난 정의용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국가정보원장이 3월 8일 미국 워싱턴으로 날아갔다. 정 실장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접견하고 김 위원장의 비핵화 의사 및 방북 초청 메시지를 전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측근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즉석에서 김 위원장을 만나겠다고 수락했다. 미·북 정상회담 개최 기대는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당시 중앙정보국 국장)의 비밀 방북으로 급물살을 탔다. 부활절 주말(3월 31일∼4월 1일) 극비 방북한 폼페이오 장관은 김 위원장을 면담하고 비핵화 의제 등을 조율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도 4월 9일 각료회의에서 “5월 또는 6월 초 (김 위원장을) 만날 것”이라고 공개했다.

판문점에서 열린 4·27 남북정상회담은 미·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켜진 청신호였다. 남북 정상은 ‘판문점 선언’을 통해 정전 65주년인 올해 종전선언을 추진하기로 했다.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 실현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했다. 하지만 국내 보수진영에서는 ‘한반도 비핵화’에는 한·미 연합훈련 축소, 미군 전략자산 전개 금지, 주한미군 철수라는 북한의 노림수가 담겨 있다는 비판을 제기했다. 북한은 폼페이오 장관이 두 번째로 방북한 5월 9일 그간 억류했던 한국계 미국인 3명을 전격 석방했다. 워싱턴 인근 앤드루스 공군기지에서 이들을 맞은 트럼프 대통령은 몇 시간 뒤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미·북 정상회담을 열 것”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순풍을 타는 듯하던 분위기는 일순간에 돌변했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5월 13일 북한 핵무기·핵물질을 테네시주 오크리지 핵시설로 가져와 폐기하겠다는 의지를 밝히자 북한은 사흘 뒤 한·미 연합공중훈련(맥스 선더)을 빌미로 남북 고위급 회담을 취소했다. 같은 날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은 “일방적으로 핵 포기를 강요한다면 미·북 정상회담을 재고려하겠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이 워싱턴으로 날아가 트럼프 대통령을 만난 22일 위기는 최고조에 달했다.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의 ‘리비아 모델’ 언급에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은 “아둔한 얼뜨기”라고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냈다. 격분한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김 위원장에게 공개서한을 보내는 형식으로 정상회담을 취소했다.

북한은 즉각 이례적으로 대화 재개를 요청했다. 김 제1부상이 대화를 지속하고 싶다는 내용의 긴급 담화를 발표했으며 김 위원장도 5월 26일 문 대통령과 판문점 북측 지역에서 남북정상회담을 갖고 대화 의지를 드러냈다. 트럼프 대통령이 회담 재개 요청을 받아들여, 다음 날 미국과 북한은 판문점 통일각에서 정상회담 준비를 위한 실무회담에 나섰다. 미국은 김 통일전선부장의 미국 뉴욕 방문에 이어 워싱턴 입성을 받아들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 통일전선부장으로부터 김 위원장의 친서를 전달받고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 개최를 최종 확인했다.

김현아 기자 kimhaha@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