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먼 조상들은 한곳에 정착하기 전에 여러 곳을 ‘여행’하며 살 곳을 찾아 헤맸다. 이른바 유목민의 삶이었다. 우리 조상만 하더라도 저 멀리 인도의 접경 파미르고원에서 시작해 중앙아시아를 전전하며 유목생활을 이어가다가 1만 년 만에 백두산 지역에 정착하게 된 것이다. 다른 민족도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물론 민족의 이동을 단순히 여행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다소 지나칠 수도 있다.
오늘날 여행은 고향을 떠났다가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을 의미한다. 살 곳을 찾아 아예 이주하는 것은 여행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여행의 본질은 어디론가 떠나는 것이니 내용은 마찬가지다. 이주는 가서 돌아오지 않는 것이지만 새로운 곳에 간다는 것이 요점이다. 돌아오거나 돌아오지 않는 것은 저마다의 사정일 뿐이다. 여행목적으로 갔다가 그곳에 눌러앉는 것도 흔히 있는 일이다.
그런데 어째서 인간은 이주하거나 여행을 하는 것일까? 이주는 오래 살기에 마땅한 곳을 찾아가는 행위다. 그러나 여행은 사는 곳이 지루해서 어딘가 가보려고 하는 것이다. 여행은 무엇인가 새로운 환경을 접해보고 싶은 인간 심층부의 욕망이다. 인간은 언제나 새로운 곳을 찾아 헤매는 존재다. 인류가 생긴 이래 그렇게 해왔다. 그 결과 오늘날 지구 곳곳에 인류가 자리 잡게 된 것이다.
밝혀진 인류의 역사를 보면 모든 민족이 아프리카 어느 지역에서 발원했다고 한다. 인류는 30만 년 전에는 아프리카 지역에 몰려 있었다. 그때 인류는 고향을 떠나기 시작했다. 그 지역이 살기에 적합했는지 인간의 본능 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 그저 두 가지 이유가 겹쳐졌다고 보면 될 것이다.
문제는 여행이 갖는 의미다. 좋은 곳을 찾아 떠나는 것은 생존문제이니 여기서 다룰 내용이 아니다. 여기서는 단순히 취미의 여행으로서 그것이 인생에 미치는 영향을 고찰해보고자 한다. 여행이란 무엇인가? 이것은 과학적 정의를 묻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간단하다. 어디론가 돌아다니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의 삶에 무슨 의미가 있는가를 물을 때는 상당히 중요한 뜻이 포함돼 있는 것이다.
이미지 크게보기 김승호 주역학자
운명은 자기 정체성에 대한 반작용이므로 자기 자신을 애써 떠난다면(여행) 운명도 변하게 된다. 대개 사람들은 사회생활을 위해 어떤 틀에 대해 숙달하면서 고착돼 가는 법인데 이에 따라 달갑지 않은 고착도 생기게 된다. 나이가 들어가면 사람은 돌덩이처럼 점점 굳어지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산이다. 여행이란 이것으로부터 탈피하는 것이니 여행의 기회가 있을 때마다 유념해야 할 일이다.
여행지에서는 당연히 몸이 자유스럽겠지만 생각도 계속 바꿔봐야 한다. 특히 오랜 세월 자신이 유지해왔던 신념, 버릇, 취향 등에 대해 슬쩍 바꿔 볼 생각도 해보는 것이다.
주역에서 여행지라는 곳은 어디를 가도 바람으로 표현하는데 이는 바람이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는 뜻이다. 여행이란 다름 아닌 바람을 쐰다는 의미인바 여행 중에는 새로운 환경에 접한 김에 자신의 변화를 추구해봐야 할 일이다. 단순히 놀다가 오는 것은 여행의 본질이 아니다. 원래 우리의 생명구조 안에는 변화장치가 있다. 그것이 바로 여행욕인데 그렇게 함으로써 고정된 틀이 깨지도록 진화해 온 것이다. 여행본능은 실로 우리 영혼 속에 내재된 심오한 기능인데 사회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이 기능이 마비돼 여행도 여행답지 못하게 된다. 이를 시급히 해결해야 한다.
주역학자
;){kind=link}
;){kind=li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