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5월 18일 서초동 서울고등법원 사무실에서 강민구 고법 부장판사가 메모 애플리케이션 에버노트를 사용하는 모습을 시연하고 있다. 신창섭 기자 bluesky@

법조계 IT전문가 강민구 高法부장

혼자 삼각대·스마트폰 설치해
앱 활용·茶 덖는 법 등 영상 찍어
유튜브 업로드…벌써 190만뷰
좋은 앱은 비서 10명보다 훌륭

메모 앱 켜고 말하면 활자 척척
법원장 3년간 책 17권 쓴 비결
108배 竹비소리도 앱으로 해결
판결문은 보안 탓 꾹꾹 참는 중

국내 전자소송 설계圖 만들고
그림전시 예술법정 도입 주인공
60세에도 AI·음성인식술 관심
또래들에 ‘호기심·열정’ 추천

“모르는 사람들은 저한테 별도의 ‘팀’이 있는 줄 알아요. 저는 혼자서 책도 쓰고 유튜브 동영상 업로드도 직접 합니다.”

사실 기자도 그런 줄로만 알았다. 강민구(60)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를 만나서 설명을 듣기 전까지는 그에게 조력자 모임 비슷한 게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2017년 초까지 약 3년간의 지방법원장 재임 기간에 ‘부산법원통신’ ‘창원이야기’ 등 17권의 책을 썼다. 도합 7000여 페이지다. 최근에는 이를 집대성한 ‘인생의 밀도’라는 책도 냈다. 지난해부터는 첨단 애플리케이션 활용법 등 동영상도 제작해 유튜브에 올리고 있다. 누적 190만 뷰다. 아이돌 그룹의 뮤직비디오 못지않다.

책에 대해 먼저 물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독일의 철학자가 사무실에 ‘구술(口述) 공장’을 차려 놨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본인이 말하면 제자들이 받아 치고 정리해서 논문이나 책을 만든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를 만난 지난 5월 18일 서초동 서울고등법원 15층 사무실에 구술 공장 따위는 없었다. 그는 비결을 묻는 말에 껄껄 웃으며 “최신 음성인식 기법과 에버노트라는 메모 앱을 결합하면 10명의 비서보다 더 뛰어난 효율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강 부장판사는 곧장 에버노트를 사용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우선 구글의 클라우드 서비스 드라이브를 열고 연동된 에버노트 앱을 불러온 뒤 연결된 마이크에 대고 말하자 화면에 그의 구술이 그대로 활자화됐다. 강 부장판사는 “경상도 사투리를 쓰면 잘 못 알아들을 때도 있지만 또박또박 말하면 음성 인식률이 90%가 넘는다”고 말했다.

물론 음성인식 자체가 놀라운 신기술은 아니다. 삼성전자 갤럭시 스마트폰, 애플 아이폰, 네이버 등 포털도 음성인식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문제는 적극적 활용이다. “사실 저도 에버노트에 대한 얘기는 오래전부터 들었는데 음성인식 기술 사용은 잘 하지 않았어요. 2014년 현충일에 용두산(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정상에 올라갔다가 뭔가 생각이 났는데 비가 내리고 있어서 메모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생각난 게 에버노트였고 그 후부터 줄곧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는 강 부장판사를 ‘유튜브 스타’로 만드는 데도 일조했다. 그의 이름으로 유튜브를 검색하니 90분이 넘는 강연 동영상이 3개, 앱 활용법 동영상 18개가 검색됐다. 기자가 직접 확인해 보니 앱 장터에서 앱을 내려받는 것부터 시작해 스마트폰 사용에 미숙한 사람들도 쉽게 따라 할 수 있도록 ‘친절하게’ 구성돼 있었다. 강 부장판사는 “초등학생들도 쉽게 따라 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인기 비결”이라면서 “스마트폰과 삼각대를 이용해 혼자서 촬영하고 업로드도 직접 한다”고 말했다.

강 부장판사는 스마트폰을 꺼내 들고 시스트란의 ‘카카오톡 플러스 친구’에 대해서도 소개했다. 시스트란은 인공지능(AI) 번역을 제공하는 업체로 지난 2014년 국내 기업에 인수됐다. 시스트란 카카오톡 플러스 친구는 지난 4월 시작된 서비스로 모바일 메신저 카카오톡에 대화하듯 적으면 영어, 중국어, 일본어는 물론 프랑스어, 독일어, 러시아어, 베트남어, 태국어 번역까지 제공한다. 불과 한 달 전에 출시된 마이크로소프트의 번역 앱 트랜슬레이터도 그의 스마트폰에 깔려 있었다.

에버노트나 시스트란의 카카오톡 플러스 친구, 마이크로소프트의 트랜슬레이터도 거의 언론에 보도되지 않은 앱이다. 그는 이런 정보를 어디서 얻을까. 기다렸다는 듯 강 부장판사는 다시 스마트폰을 꺼내 들고 구글 알리미를 보여줬다. 단어를 입력해 놓으면 해당 단어가 포함된 전 세계의 정보들이 구글 G메일 계정을 통해 전송되는 기능이다. 인공지능 등 빼곡하게 저장된 수십 개의 단어가 보였다.

그는 이를 통해 닥치는 대로 정보를 습득하며 직접 시행해보고, 다른 사람에게 전달했다. 결국 열정과 에너지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욱이 그는 젊은이가 아니라 예순 살에, 격무 30년의 부장판사다. “어려서부터 항상 호기심, 탐구심, 열정의 DNA가 강했습니다.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소질에다가 후천적 학습 태도가 결합해 그리된 것 같습니다. 2002년부터 꾸준히 108배를 하고 있고 일요일 새벽에는 친구들과 청계산 등산을 16년째 하면서 건강관리에도 신경 쓰고 있고요.”

그러고 보니 사무실 바닥 한쪽에 깔린 방석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108배도 스마트폰 앱을 이용했다. 앱을 시행하니 9초에 한 번씩 청명한 죽비소리가 났다. 사무실 테이블에는 차를 내리는 다양한 도구도 보였다. 2005년부터 해마다 경남 하동으로 가서 1년 치 마실 차를 직접 덖어온다고 했다. 유튜브에는 그가 차를 덖는 과정을 소개한 영상도 있었다. 그는 쉴새 없이 쏟아지는 정보를 습득하고 108배를 하거나 차를 마시며 생각을 다듬는 듯 보였다.

사실 강 부장판사는 오래전부터 법조계의 정보기술(IT) 전문가로 이름이 높았다. 그가 1999년 미국 버지니아주에서 사법 정보화 특별 과정을 연수하고 기록한 보고서는 국내 전자 법정의 기초가 됐다. 강 부장판사는 “2000년 귀국 후 250쪽 보고서와 650MB의 자료집 CD를 묶어서 대법원 당국에 보고했고 이를 기초로 2003년 ‘함께하는 법정’이라는 책을 펴냈다”면서 “해당 내용이 한국 사법부의 전자소송, 전자법정의 기초 설계도가 됐다”고 말했다.

인구 비례로 보면 중국은 인구 9000명당 판사 한 명이다. 우리나라는 1만7500명당 한 명에 불과하다. 강 부장판사는 “판사 한 명당 1만7500명이 감당되는 것은 종합법률정보(판례 등 검색 도구) 등 국내 IT 리소스가 튼튼하게 뒷받침돼 있기 때문”이라면서 “판결문도 에버노트 앱을 이용해 쓰기를 희망하지만 클라우드의 특성상 보안 문제가 있을 수 있어서 법관들이 아직 사용을 안 하고 있다”고 말했다.

IT 전도사 강 부장판사는 지난 2014년 국내에 처음으로 예술법정을 도입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전 법정에 온화한 그림을 전시, 법정에 선 사람들의 경계심과 마음의 상처를 누그러뜨리자는 취지였다. 강 부장판사는 “전자법정과 예술법정은 양극단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목적은 같다”면서 “사법서비스의 수요자인 국민의 시각에서 법정환경을 재설계하고 배치해 궁극적으로는 사법부가 국민의 신뢰를 확보, 수긍할 수 있는 재판을 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강 부장판사는 올해 2월 서울고등법원으로 돌아왔다. 법원도서관장 1년 임기를 마친 뒤다. “재판부로 복귀한 법관 신분에서 최선을 다해 당사자의 한을 공정하게 풀어주는 역할에 집중하겠습니다. 여력이 있으면 디지털 상록수 역할도 지속해 ‘백만양현 프로젝트(IT 감수성을 높여 급변하는 미래에 대비할 인재들을 집중 육성한다는 강 부장판사의 목표)’가 실현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삶은 항상 현재, 바로 그 공간(Now & Here)이 소중하기에 너무 먼 미래에 대해 조바심을 내거나 걱정하지 않고 하루하루 본분에 충실하려 합니다.” 직접 쓴 책 제목처럼 그의 ‘인생의 밀도’는 더 깊어질 일만 남은 듯 보였다.

임정환 기자 yom724@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