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3월 26일 발의한 개헌안이 결국 폐기됐다. 더불어민주당(118석)은 의결 시한(60일)인 24일 국회 표결을 시도했지만 야권 반대로 ‘투표 불성립’이 되고 말았다.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113석)의 반대·불참만으로도 의결 정족수인 재적 3분의 2(192석)에 못 미쳤다. 게다가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도 문 대통령에게 개헌안 ‘철회’를 요구했다. 폐기는 당연한 귀결이다. 발의 때부터 개헌 절차·내용·시기가 모두 부적절했다는 점에서 개헌안이 그대로 통과될 가능성은 전무했기 때문이다.

해외 순방 중에 문 대통령이 전자결재로 발의한 개헌안은 법제처 심사, 국무회의 심의를 거치지 않은 채 청와대 수석의 사흘간 ‘쪼개기’ 발표로 공개됐다. 위헌 논란이 일자 국무회의에서 고작 40분 간 심의라는 요식 절차만 갖췄다. 개헌안 내용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국체의 근간을 위협할 정도로 좌(左)편향이 심해 ‘민주당 당헌’이라고 불릴 정도였다. 전문(前文)에 부마항쟁, 5·18, 6·10을 명시하고, 본문에도 친(親)노동 조항을 대거 포함시켰다. 생명권·안전권·정보기본권·주거권·건강권 등 추상적 구호들로 가득 채워 지방선거를 염두에 두고 편가르기와 선심성 말잔치를 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개헌 논의의 출발은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한의 축소였지만, 정작 문 대통령 개헌안에는 제왕적 인사권을 견제하는 장치조차 미흡했다.

청와대는 6·13 지방선거 때 개헌 국민투표가 대선 공약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개헌에 대한 진정성이 있다면 결코 통과될 수 없는 일방적 개헌안을 제시해선 안 된다. 국회 개헌 촉진용이라는 주장도 했지만, 합의 노력을 선행했어야 했다. 찬반만 표시할 수 있는 개헌안을 던져놓고 국회와 국민을 압박하는 것은 독선(獨善)이다. 이번 폐기로 개헌 동력을 떨어뜨리는 부작용까지 낳았다. 다시는 이런 일방적 드라이브가 없어야 남은 임기 동안 국정 난맥을 줄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