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미 작가의 책 ‘괭이부리말 아이들’은 인천 만석동 달동네 아이들과 그 가족들의 힘겨운 삶과 동네 친구들의 우정 그리고 그 아이들의 성장기를 담고 있다. 쌍둥이 자매 숙자와 숙희는 물론, 동수와 동준 등 형제자매와 그 친구들, 영호 삼촌과 김명희 선생님, 아이들의 아버지, 어머니가 그려내는 삶 속에서 나는 가난했지만, 행복했던 유년시절을 돌아보게 된다.

며칠 전 초등학교 동창생 몇몇이 고향 마을에 모였다. 이 땅의 산골 마을이 대개 그러하듯 내가 졸업한 시골 초등학교는 이미 오래전에 폐교가 되었다. 아이들이 사라진 농촌 마을의 현주소를 생생하게 마주하고 있는 셈이다.

내가 졸업할 때도 졸업생이 30명에 불과했으니, 폐교는 수십 년 전에 이미 예고된 결말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튼 수십 년의 세월을 격하여 다시 만난 친구들과의 재회는 반가움과 함께 농촌의 안타까운 현실을 되새기게 해주었다. 전기도 없고, 마을버스도 없는 산골 벽촌 작은 마을에서 책보를 둘러메고 학교와 집을 오가고, 동네 앞 개울에서 멱 감고 물고기 잡고, 반딧불이와 놀고, 메뚜기와 산딸기, 오디로 계절의 별미를 즐기던, 가난한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들이 지금은 어엿한 중견기업의 사장님이 되고, 식당 사장님이 되고, 학교 교감 선생님이 되고, 국세청의 사무관이 되고, 교수가 되고…. 예비 의사의, 예비 법조인의, 예비 사장님의 학부모가 되고…. 작은 시골 마을 아이들의 성장이 대견하고 뿌듯하다. 하지만, 농촌 아이들의 뿌듯함도 학교가 사라지면서 함께 사라져 가고 있다.

농촌이라는 고향을 잃은 아이들에게, 농촌이라는 고향을 품고 살아가는 우리 세대의 향수와 공감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지금 어디에서 어떤 일을 하면서 살아가든 농촌이라는, 잊을 수 없는 고향을 지닌 사람들은 농촌에 대한 애정을, 관심을 영원히 간직하면서 살아가게 된다. 직접적으로 농업에 종사하지 않고 농업과 관련된 직무를 수행하지 않더라도, 이들은 농업, 농촌 발전의 커다란 후원자이며 후견인임에 틀림없다.

농촌의 농가인구는 250만 명에도 이르지 못하고, 70세 이상의 고령 인구가 30%를 초과하는 현실은 농촌의 농가인구 감소와 고령화 추세가 얼마나 심각한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거기에 더하여 농촌을 고향으로 둔 아이들이 사라져 가는 현실은 더더욱 안타까운 일이다. 모쪼록 농촌 지역의 의료, 교육, 교통, 문화 서비스 등 도시에 버금가는 정주 여건이 조속히 마련되어, 귀농·귀촌이 더욱 활성화되길 바란다.

폐교되었던 농촌 마을의 학교가 다시 문을 열고, 그리하여 10년, 20년, 30년, 40년, 50년, 100년 후에도 농촌이 고향인 아이들, 농업·농촌에 대한 애정을 잊지 않는 아이들이 끊임없이 배출되길 바란다. 그 아이들이 이 나라의 미래를 담당할 멋진 주인공으로 성장해 가길 바라며, 농업·농촌에 대한 든든한 후원자, 후견인이 되어주길 바란다.

정준호·농협이념중앙교육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