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무엇보다 당연하게도 가장 먼저 할 일은 쓰는 것이다. 그런 다음에는 쓰는 것을 계속해 나가야 한다. 그것이 누구의 흥미를 끌지 못할 때조차. 그것이 영원토록 그 누구의 흥미도 끌지 못할 것이라는 기분이 들 때조차. 원고가 서랍 안에 쌓이고 우리가 다른 것들을 쓰다 그 쌓인 원고들을 잊어버리게 될 때조차.” (97쪽)

스위스에 거주하면서 프랑스어로 글을 썼던 헝가리 출신 소설가 아고타 크리스토프(1935∼2011)는 ‘어떻게 작가가 되는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그저 계속 써나가는 것”이라고. 자전적 소설 ‘문맹’(한겨레출판)의 한 대목이다.

‘인간사회의 불확실성과 부조리함’을 담담하고 건조한 문장에 담아내 특히 작가들로부터 환호를 받은 그이지만, 그의 말처럼 그저 계속 써나가는 것이 쉽지 않았다. 1935년 헝가리에서 태어나, 스물한 살에 반체제 운동을 하던 남편과 함께 스위스로 이주한 그는 그곳에서 자신의 언어를 버리고 프랑스어를 배우고 익혀 작품을 써야 했기 때문이다. ‘문맹’은 작가가 자신의 유년기부터 청소년기, 헝가리를 떠나 오스트리아를 거쳐 스위스로 이주하기까지 끊임없이 ‘언어’를 잃고, ‘언어’를 배우고, 고집스럽게 글을 쓴 끝에 결국 작가라는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문맹’은 네 살 때 글을 읽기 시작했던 그가 성인이 돼 다시 ‘문맹자’가 된 뒤 여기서 벗어나기 위해 어떻게 글을 배우고, 어떻게 끈질기게 글을 써왔는지를 보여준다.

그는 어느 날 저녁 베를린에서 열린 낭독회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작가가 되는가’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작가가 된다. 우리가 쓰는 것에 대한 믿음을 결코 잃지 않은 채. 끈질기고 고집스럽게 쓰면서.” 크리스토프에게는 생을 걸고 고집스럽게 계속할 것이 글이었지만, 사람들에겐 제각각 고집스럽게 계속해 나가야 할 것들이 있을 것이다. 누구로부터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해도 담담하게 다시 길을 갈 힘을, ‘문맹’은 말하고 있다. 128쪽, 1만1000원.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