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축제’ 5월 31일∼6월 24일

‘베테랑 김용걸’과 ‘신예 윤전일’, 올해 8회를 맞은 국내 발레계 최대 잔치 ‘대한민국 발레축제’의 역사가 궁금하다면 두 안무가를 보면 된다. 국내 1세대 발레리노에서 안무가로 변신한 후 한 해도 빠짐없이 발레축제에 섰던 김용걸은 올해 처음으로 초청 안무가라는 이름을 달았고, TV 프로그램 ‘댄싱9’에 출연해 젊은 세대에게 친숙한 스타 무용수 윤전일은 이번 축제에서 안무가로 데뷔한다. 발레축제의 전통과 도전을 상징하는 두 안무가의 무대에 눈길이 쏠리는 것은 당연한 일. 오는 31일부터 6월 24일까지 발레축제의 여정을 시작하기 앞서, 두 안무가를 11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먼저 만났다.

‘발레리노 1세대’ 베테랑 안무가 김용걸

이미지 크게보기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만난 발레 안무가 김용걸은 신작 ‘The type B’에 대해 “스스로에 대한 이야기”지만, “안무에 대한 집중력을 흐트러트리지 않기 위해 직접 출연하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김선규 기자

초청 안무가 제안받고 수락
자기색깔 녹인 ‘타입B’ 올려
“이 축제 10년 서는 게 목표”

“8년 연속 참여하다 보니 이제는 대한민국 발레축제 시즌에 몸의 리듬이 저절로 맞춰져 가고 있어요. 매년 공모에 선정돼 작품을 올렸지만 초청 안무가로는 올해 처음이라 설레네요.”

2011년부터 발레축제의 모든 회차에 참가한 안무가 김용걸이 올해는 초청 안무가로서 기획공연을 선보인다. 2000년 동양인 발레리노로는 처음으로 파리오페라발레단에 입단해 ‘한국 발레리노 1세대’ ‘원조 발레스타’로 불리던 그에게 안무가로서 입지를 다지게 해 준 것도 발레축제다. 그가 그간 발레축제에서 선보인 ‘워크(Work) 시리즈’는 2012년 한국 춤비평가협회 작품상, 2017년 이데일리 문화대상 무용 최우수상 등을 안겨줬다.

그런 그에게도 초청 안무가로 서자는 것은 ‘깜짝 제안’이었다. 여느 때처럼 작품 공모에 참여해 발레축제 사무국과 인터뷰를 하던 중, ‘프로그램 내용이 좋으니 올해는 초청 안무가로 공연을 해보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을 받았다. “현장에서 그런 말이 나와서 놀랐는데 저도 모르게 ‘안 할 이유가 없죠’라고 덤덤하게 대답했어요. 속으로는 제 목표대로 돼 가고 있어서 기뻤는데도 말이죠(웃음).”

그가 31일부터 6월 1일까지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공연하는 작품은 신작 ‘The type B’다. 사회적 이슈에 대한 관심을 꾸준히 표현해왔던 그가 이번에는 “‘B형’이자 ‘발레리노(Ballerino)’인 김용걸의 정체성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을 골랐다. 작품은 다양한 그의 관심사를 따라가며 진행된다. 개인적이고 사소한 것은 물론, 동성애·결혼 등에 대한 김용걸의 관심도 녹아들어 있다. 그는 “이번 공연에서 처음으로 소품을 활용했다”고 귀띔했다.

“아직도 발레축제에 참가 제안서를 낼 때마다 떨린다”는 그는 “현재 목표는 발레축제 무대에 10년 동안 서는 것이다. 다음은 훌륭한 안무가들이 채워줄 거라 믿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젊은 발레리노들의 눈길을 받는 위치에 선 그는 “후배들을 말로 다그치기보다 선배로서 어떻게 사는지 몸으로 보여주고 싶다”고 덧붙였다.

‘스타 무용수’출신 신예 안무가 윤전일

이미지 크게보기 발레리노에서 안무가로 데뷔하는 윤전일은 작품 ‘사랑에 미치다’에서 발레 외에도 “한국무용 등 여러 장르의 움직임이 잘 드러날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선규 기자 ufokim@

TV댄싱프로 우승으로 인기
‘사랑에 미치다’로 안무 데뷔
“대중과 교감의 폭 넓힐 것”

“발레리노로 활동하면서 부상의 위험 때문에 몸을 사린 적도 사실 있었는데, 직접 안무를 해보니 그때 안무 선생님들 말을 더 잘 들을 걸 그랬어요. 얼마 전에는 문병남 선생님(전 국립발레단 부예술감독)과 통화하다가 예전에 죄송했다고 한 적도 있을 정도예요(웃음).”

TV 프로그램 ‘댄싱9’에서 우승하면서 젊은 스타 발레리노로 발돋움한 윤전일이 올해 발레축제를 통해 안무가로 데뷔한다. “한번 도전해보자는 마음으로 공모에 참여했는데 덜컥 되고 나니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다”는 그는 6월 9∼10일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첫 안무작 ‘사랑에 미치다’를 선보인다.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루마니아 국립오페라발레단 주역 출신으로 이름을 알렸지만 윤전일의 활동 영역은 비단 발레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의 첫 안무작도 불치병에 걸린 여자와 이를 모른 채 사랑에 열중하는 남자의 비극적 이야기를 발레, 한국무용, 현대무용 등의 갈래로 풀어낸다. “관객들에게 너무 많은 생각을 하게 하고 싶지는 않아요. 저는 비평가가 아니라 관객들을 위해 작품을 만드는 거니까 그분들이 가장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미국 워싱턴발레단 수석무용수를 지낸 김현웅,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신승원 등 그와 학창 시절 인연이 있거나 함께 무대에 섰던 무용수들이 선뜻 공연에 힘을 보탰지만, 안무가로서 호흡을 맞춰가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제가 만든 동작들을 무용수들에게 줘도 그림이 제 마음처럼 나오지는 않더라고요. 자꾸 제 색깔을 입히려고 하니까 안 되는 거였어요. 그래서 다 뒤집고 처음으로 돌아가서 각자의 색깔을 존중하며 작업하고 있어요.”

그는 젊은 발레리노이자 이제 막 발을 뗀 안무가로서 자신의 역할에 대해 ‘대중과 교감의 폭을 넓히는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선배들이 발레 등 무용의 기술적 수준을 대폭 올려놓으셨다면, 저는 여기 대중이 좋아할 만한 감성과 드라마를 입혀서 보여드리고 싶어요. 결국 무용수들에게 스타성을 부여해주는 건 대중이잖아요.”

인지현 기자 loveofa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