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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부. 문화혁명 - ② 달라지는 여행 형태

1인 가구가 전체 4분의1 넘어
자신을 위해 과감히 지갑열어
‘1인 여행’ 5년새 5배로 급증

고령자 ‘보행약자’ 보는 시선
적극적 여가활동 참여에 제약
정부 적극지원정책 필요할 때

美선 ‘여행은 평생공부’ 개념
日 은퇴자 관광이 지역활성화

한국 사회의 미래 전망에서 뚜렷하게 가팔라지고 있는 두 개의 곡선이 있다. 둘 모두 곡선의 경사도는 급해지고 있지만, 하나는 상향, 다른 하나는 하향으로 방향이 정반대다. 가파르게 상향하는 것이 ‘고령자 수’의 증가 곡선이고, 하향 추이를 보이는 것이 ‘가구 구성원 수’의 감소 곡선이다. 대한민국은 2017년 기준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14%를 넘어 이미 ‘고령사회’로 접어들었다. 통계청의 당초 예상보다 1년 빠른 속도였다.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와 저출산 현상 고착 등의 영향으로 ‘초고령 사회’ 진입 시기 역시, 지금 예측하는 2026년보다 더 빨라질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바야흐로 100세 장수의 시대. ‘호모 헌드레드’의 시대다.

가족의 형태도 급격하게 달라지고 있다. 보건복지부의 사회보장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1인 가구는 2016년 기준 539만8000가구. 1995년에 1인 가구 수가 164만 가구였으니 3.2배로 증가한 셈이다. 1인 가구가 전체 가구 수(1936만8000가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7.9%로 가장 크다. 통계청 장래 가구 추계에 따르면 1인 가구 증가는 앞으로도 계속돼 2035년에는 764만 가구, 2045년에는 819만 가구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되면 1인 가구가 차지하는 비중은 36.3%에 달해 셋 중 한 가구 이상이 1인 가구가 될 전망이다.

노령화와 1인 가구의 증가는 비단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문제는 곡선의 급한 경사도, 즉 ‘속도’다. 일찍이 겪어보지 못했던 인구와 가족 형태의 급격한 변화에 대한 대응은, 그동안 소득이나 생계 등 주로 경제적 측면에서만 모색돼왔다. 반면 사회 구성원 개개인의 문화 향유와 여가의 권리 측면에서의 접근은 거의 없었다. 변화된 사회에서의 개인이나 가족 구성원들의 행복감의 문제는 대안 마련은커녕 본격적인 논의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1인 가구와 혼자 하는 여행 = 1인 가구가 늘어나고 혼자 소비하고, 혼자 즐기는 이른바 ‘1인 문화’를 누리는 사람까지 더해지면서 1인 소비는 그야말로 폭증하고 있다. 경제 저성장의 영향으로 소비가 ‘과시’ 중심에서 ‘가치’ 중심으로 옮겨가면서 벌어지는 현상이라는 분석이다. 1인 문화를 대표하는 두 가지 키워드는 ‘관계 지향’과 ‘삶의 질 향상’. 무엇을 먹느냐가 아니라 누구와 먹느냐를 통해 정서적 포만을 따지고, 불황에도 자신을 위한 소비에는 과감하게 지갑을 연다는 것이다. 이기종 경희대 관광학부 교수는 “1인 문화와 1인 소비의 확산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되돌릴 수 없는 현상이라는 점”이라며 “여행 등 여가가 단순한 소비가 아니라 권리와 복지라면 이들을 위한 민간의 여가 서비스를 끌어내는 정부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누가, 왜 혼자 여행하나 = ‘혼자 가는 여행’에 대한 정부의 계측자료는 없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매년 ‘국민 여행 실태조사’에서 ‘개인 여행’을 조사하고 있지만, ‘개인 여행’은 가구원 한 명이 혼자, 또는 가족이 아닌 타인과 함께 한 여행까지 합산한 수치다. 실태 조사마저 이뤄지지 않은 건 혼자 가는 여행에 그만큼 관심이 없었다는 증거다.

하나투어에 따르면 지난해 해외여행 상품을 1명이 예약한 인원은 20만6000명. 5년 전인 2011년과 비교하면 5배 가까이 늘었다. 혼자 하는 여행이 늘어나는 것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비자카드의 동남아 여성 대상 조사 결과에 의하면 혼자 여행을 떠나는 비율은 2013년 15%에서 2015년 24%로 증가했다. 이들은 혼자 여행을 하는 이유로 ‘자유’(60%)와 ‘도전’(45%)을 들었다. 가족이나 친구가 여행할 시간이나 비용이 없기 때문이란 답은 32%에 불과했다. 동반자가 없어서가 아니라 능동적 입장에서 혼자 하는 여행을 택하고 있다는 말이다.

◇보행 약자 차원에 머문 고령층 여가정책 = 관광분야 정책을 마련하면서 정부가 고령자를 바라보는 시각은 ‘보행 약자’ 수준에 머물고 있다. 접근성 확대가 고령자 관광정책의 거의 전부라는 얘기다. 고령자들의 취향에 맞춘 여가활동을 확대하거나 의미 있는 노년기를 보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여가정책은 미흡하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이 고령층의 여가 문제를 복지와 권리가 아닌 개인의 책임 소비 활동으로 돌리면서 노인들이 TV 시청이나 무료전철을 타고 소일하도록 방관하고 있다는 것이다. 고령층들의 열악한 여가는 고령자로 진입하는 세대들이 청·장년기에 여가프로그램에 참여했던 경험이 없어 관련 정보와 의욕이 크게 부족한 탓도 있지만, 그보다 국가나 지역사회가 제공하는 관련 프로그램들이 미비한 이유가 더 크다.

◇일본, 은퇴자 관광정책을 지역 활성화와 연계하다 = 선진국의 고령 여가 정책은 저마다 다양하다. 민간단체가 중심이 돼 여행을 인문학 공부로 이어가는 프로그램이 있는가 하면, 지역 경제 부흥이나 지역사회 교류와 연계하는 프로그램도 있다. 고령자를 위한 관광정책이 국가별로 다양하다는 것은 그만큼 사회·경제적 상황 등에 따라 정책이 다양하고 선택의 폭도 넓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본은 1947년부터 1949년 사이에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인 ‘단카이 세대’의 은퇴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2007년 무렵부터 은퇴 세대 대상의 관광정책을 정부 주도 지역 문화 활성화 관광정책과 결합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그린 투어리즘’ ‘시니어계층 관광 루트 프로그램’‘귀농촉진 프로그램’ ‘정주촉진 프로그램’ 등이다. 여행과 평생교육을 함께 하는 ‘클럽 투어리즘’ ‘트래블 스터디’ 등의 프로그램도 이때 만들어진 것들이다.

◇미국, 은퇴자에게 여행은 평생 공부 = 미국은 1946년부터 1964년에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가 2001년 고령층으로 처음 진입했는데, 이 무렵부터 미국의 고령자 여가를 위한 관광정책이 시작됐다. 미국의 고령관광은 YMCA, YWCA, 보이스카우트와 같은 민간단체 중심으로 발전했다. 미국 고령관광 정책의 대표적인 사례가 평생교육과 여행을 결합한 ‘엘더 호스텔’이다. 엘더 호스텔의 대표적인 프로그램이 ‘로드 스칼러’다. 선호하는 지역 및 국가를 선택해 방문하고 그 나라에 대한 관광정보 등을 배우는 관광 교육프로그램으로 미국 고령층의 선호가 높다. 퇴직한 교직원을 대상으로 운영하는 ‘퇴직센터’에서도 여행프로그램이 상시 진행되고 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 1955년부터 1963년에 태어난 우리나라 베이비붐 세대의 여가는 볼품이 없다. 고령사회를 대비하고 관련 산업의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고령 관광에 대한 지원정책을 미룰 수 없는 상황이다. 고령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관광상품 개발, 관광시설 확충, 관련 인력 확대 및 서비스 제고, 비용절감 방만 마련 등이 시급하다. 안윤영 세종대 호텔경영학과 교수는 “고령 관광 활성화를 위한 중장기적 개발계획 수립이 필요하다”며 “수요 파악을 위한 실태조사를 거쳐 노령자 친화적인 관광자원 개발을 위한 정부 투자를 확대해나가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를테면 건강·의료·주거 등 복합관광시설을 갖춘 관광지를 도입하거나, 지역마다 고령 관광 특화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박경일 기자 parki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