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황영성 화백이 캔버스에 유화로 그린 최근작 ‘소시장 이야기’ 앞에서 50여 년에 이르는 화업 여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황영성 화백 현대화랑서 개인전

“뉴욕 韓문화원 단체전에 출품
무명인 내가 美 언론 주목받아”

‘가족이야기’부터 ‘검은소’까지
주요 작품 30여점 이번에 전시

“광주 출신 촌놈이 그린 초가집 그림이 구석에 몇 점 걸려 있었죠. 창피했어요.”

1980년 가을 황영성(77) 화백은 미국 뉴욕 파크 애비뉴의 한국문화원 전시실에 있었다. 문화원 개관을 기념해 마련된 단체전에 모교 스승인 임직순(1921∼1996) 화백 등 대선배들과 함께 이름을 올려놓고 있었다. “가방 심부름 좀 해드리려”고 참가한 전시회였다.

“뉴욕의 기자와 평론가들이 많이 몰렸어요. 그런데 ‘어라~’ 제 그림 앞에 사람들이 몰렸어요. 그리고 ‘당신은 언제 뉴욕에 왔냐’ ‘전시회를 할 의향은 없냐’는 질문이 쏟아졌죠.”

뉴욕에서의 단체전을 얼떨떨하게 마친 후 유럽에서 미술관을 돌아볼 때 뉴욕의 황규백 화백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황 작가, 축하해. 자네 기사가 여기 신문(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 문화면에 대서특필됐어.” 황 화백의 국제무대 데뷔는 그렇게 극적이었다.

현대화랑은 27일까지 황 화백의 개인전 ‘소의 침묵’ 전을 연다. 현대화랑에서 8년 만에 여는 전시다. 황 화백은 “1980년 뉴욕 한국문화원에서의 전시가 현대화랑 박명자(75) 회장의 지원으로 성사됐다”며 “좋은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져 감회가 깊다”고 말했다.

이미지 크게보기 1980년 뉴욕의 한국문화원 단체전에 출품한 ‘초가집 그림’과 ‘가족이야기’ 연작 2점(왼쪽부터). 현대화랑 제공

평단에서는 황 화백을 50여 년 동안 서정적이고 목가적인 감수성으로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한 작가로 평가한다. 전시는 그 같은 면모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도록 1980년대 후반부터 근래의 작품까지 주요 작품 30여 점을 선보인다.

학맥, 인맥이 상대적으로 약한 지방대 미대(조선대) 출신인 황 화백이 중앙 화단에서 우뚝 설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화풍’을 찾아내려는 고집 덕분이었다. 임직순 화백(당시 조선대 미대 교수)은 고군분투하던 그에게 ‘블랙 & 화이트’로도 좋은 그림을 그릴 수 있다고 조언했다. 스승의 제안에 따라 그린 ‘오후의 병동’으로 1967년 국전에서 특선을 차지한다. ‘회색시대’는 그렇게 열렸다.

1971년에 초가집 그림은 촌스럽다고 작가들이 외면할 때 그는 초가집 그림 ‘토방’으로 또 한번 특선을 차지한다. 이후 토방 그림에는 소와 농민들, 전답도 추가되며 진화한다. 그러나 황 화백은 만족하지 않고 1989년 미대륙 대장정에 오른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우리와 같은 몽골리안이에요. 북미와 남미 대륙 탐사는 우리 문화의 원류를 찾아가는 여정이었습니다.” 그리고 1년 후 그는 ‘가족이야기’ 연작을 발표했다.

“여행 후 내 가족의 한계를 넓혔죠. 세상에서 내가 만난 모든 사람이 다 가족이구나…. 서로 존중하고 가치를 인정해야 한다는 생각에 도달했어요.”

격자 구성 속에 각양각색의 형상으로 기호화된 사람, 동물 이야기 등이 반복적으로 그려 넣어졌다. 마치 오백나한도, 득도한 과정이 모두 다르고 얼굴 생김도 다른 500명의 부처님 제자가 똑같이 앉아 있는 그림을 연상시키는 그의 그림은 서구 화단을 열광시켰다.

파리의 팔레 데 콩그레, 런던의 로열 칼리지 오브 아트(RCA), 뉴욕의 파슨스 스쿨 등 세계 유수의 미술관과 갤러리가 그를 찾았다. 황 화백은 새로운 변신을 또 시도 중이다. ‘검은 소’ 그림이 바로 그것이다. 구체적인 형상을 선과 면으로 단순화해 추상 실험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이다. 그는 작가 노트에 이렇게 썼다.

“이제 또 다른 소의 모습들, 검은 소의 모습으로 그려 보고 싶다.／소의 침묵, 즉 나의 침묵 이야기를 하려 한다.／굴곡진 시대를 지나오는 여러 과정 속에서／나의 침묵은 진실을 얼마나 밝게 나의 작업 속으로 이끌어낼 수 있을까?”

글·사진 = 이경택 기자 ktle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