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上> ‘통신비 인하’ 밀어붙이기

27일 규제개혁위 입법안 상정
통신비 원가공개 판결도 한몫
정부가 개입해 통신요금 결정
기업 영업의 자유 짓눌릴 우려

독점시장 아닌 43개업체 경쟁
취약층 특별 요금제면 몰라도
보편 요금 강제는 反시장 발상
수익성 악화땐 다른 요금 올려

알뜰폰 업계는 경쟁력 더 잃어
통신시장의 한 축 무너질 수도

정부의 반(反)시장적 통신 정책으로 인해 제4차 산업혁명의 핵심인 정보통신기술(ICT) 경쟁력이 갈수록 약화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가 ‘통신비 인하’라는 단 하나의 목적 아래, 통신 시장의 경쟁을 없애는 과격한 방식의 정책으로 ‘공급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다는 우려다. 이는 향후 필연적으로 소비자 후생이 줄어드는 ‘시장의 역습’을 수반하게 된다. 더 나아가 산업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비극적인 결말을 맞을 수도 있다. 이에 문화일보는 정부 정책의 문제점과 이로 인해 예상되는 부작용, 대안 등을 차례차례 짚어보고자 한다.

정부가 경쟁 없는 이동통신시장을 만드는 대표 상품 격인 ‘보편요금제’를 강행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보편요금제는 현재 월 3만 원대 요금제에서 제공하는 통신 서비스(데이터 1GB, 음성통화 200분 제공)를 월 2만 원대에 제공하도록 의무화하는 것으로, 정부가 통신비 인하를 위해 밀어붙이는 정책이다.

이 같은 정부의 인위적인 시장 개입은 ‘공급 생태계’를 파괴하는 결과를 낳고, 이동통신사들의 투자·고용 여력을 크게 감소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더불어 ‘시장의 역습’에 따라 정부의 요금 인하 목적마저 달성하지 못하는 최악의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부, 통신비 인하 드라이브 = 정부는 오는 27일 보편요금제 입법안을 총리실 산하 규제개혁위원회 안건에 올릴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규제개혁위를 거쳐 국회에 이 법안을 제출하는 수순을 밟아 보편요금제를 반드시 시행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통신사들은 지난해 말부터 올 2월까지 9차례 열린 가계통신비 민관정책협의회에서 “정부 주도의 인위적 요금제를 민간 기업에 강제하는 것은 위헌적”이라며 강력 반발했다.

이통사 관계자는 “시장 가격을 정부가 정하겠다는 발생 자체가 놀랍다”며 “법 근거가 도대체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이 같은 이통사의 ‘합리적인 반대’에 부딪히자 정부는 정책을 수정하고 접는 대신, 보편요금제를 강제하는 입법안을 제출했다. 스스로 법 근거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최근 대법원이 7년 만에 통신비 원가 자료 공개 판결을 내놓은 점도 정부가 기업의 영업 자유를 짓눌러가며 보편요금제를 밀어붙이는 한 요인이 되고 있다.

◇경쟁 없는 통신시장 만들려는 정부 = 정부 움직임에 업계 우려는 극에 달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통 업계를 경쟁 없는 시장으로 만들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통 시장은 공기업이 독점하는 시장이 아닌, SK텔레콤·KT·LG유플러스 등 3개의 대형 사업자와 40개까지 늘어난 알뜰폰 사업자가 치열하게 경쟁하는 시장이다. 한 사업자가 고객을 유인하기 위한 요금제를 출시하고, 이에 대응해 다른 통신사가 더 싸고 품질 좋은 다른 요금제를 내놓는다. 경쟁의 원리에 따라 시장이 소비자 후생이 증가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 업계에서는 시장 원리의 핵심 요소인 요금을 보편적으로 정하겠다는 ‘보편요금제’ 자체가 지극히 반시장적 발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공익적 상품이 필요하다면, 취약계층을 위한 별도의 요금제를 출시하도록 유도하는 게 정부 역할”이라며 “무차별적으로 같은 요금제를 출시하라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경제의 자유와 창의’는 헌법이 엄격하게 보장하고 있는 가치이기도 하다. 헌법 제119조에는 ‘대한민국의 경제 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정부의 움직임이 △기업의 사유재산권을 침해하는 점 △경영의 자유를 침해하는 점 등에서 향후 헌법재판소에서 정부법안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릴 여지가 있는 것이다. 실제 지난해 국감 보고서에서도 보편요금제와 관련, 이통사 영업의 자유와 재산권을 침해하고 시장 경쟁을 제한한다는 의견이 적시된 바 있다.

◇현실화하는 가격 개입 부작용 = 업계에서는 “시장은 정부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고 지적하고 있다. 정부의 가격 개입으로 원가에 못 미치는 가격으로 통신 서비스가 공급되면, 반드시 부작용이 뒤따르게 된다. 수익성이 악화한 이통3사는 손해를 다른 방식으로 만회하려 할 수 있다. 공기업이 아니기에, 주주들의 압박을 이통사 경영진이 견딜 방법이 없다. 이 경우, 보편요금제를 제외한 다른 요금제의 가격을 인상할 가능성이 있다.

아울러 4차 산업의 핵심인 5세대(G) 투자에 소극적으로 나서고, 5G 서비스 요금도 전반적으로 높게 책정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공익을 내세우며 선의로 시작한 일들이 결국 소비자에게 부담이 가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업계에서는 2만 원대 보편요금제 도입으로, 알뜰폰 경쟁력이 단번에 실종되는 상황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 현재도 문재인 정부 들어 통신 3사를 상대로 통신비 인하 압력을 가하면서 알뜰폰의 가격 경쟁력이 크게 떨어지며 가입자 이탈과 누적 적자가 심화하고 있다. 지난해 말 대형마트 홈플러스가 알뜰폰 사업에서 발을 뺐고, 이마트가 사업 철수를 검토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동시에 알뜰폰 업계 종사자들이 대거 실직하는 상황도 예상된다.

알뜰폰 업계 관계자는 “보편 요금제가 시행되면 통신 3사와 알뜰폰 사업자의 요금 격차는 현행보다 더 줄어든다”며 “가격 경쟁력을 내세우는 알뜰폰 업계가 고사 위기 상황이 되고, 통신시장의 한 축이 무너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손기은 기자 so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