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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얼마 전 개봉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에서는 사람들이 게임 속 가상현실(VR) ‘오아시스’에 살며 숨겨진 미션을 달성하고 상금을 차지하기 위해 전쟁을 치른다. 가상현실에서 원하는 모습으로 만들어진 사람들은, 타인과 닿지 않아도 기계를 통해 실제와 같은 오감을 느낀다. 2045년을 배경으로 한 영화 속 세상이지만, 어쩌면 그 미래는 예상보다 더 가까울 수 있다.

다가올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추진하는 신규 연구·개발(R&D) 사업도 해당 분야별 부처와 전문가들이 그리는 과학기술적 상상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각 부처가 새롭게 시작하고자 하는 사업들은 정부 투자가 필요하다고 나름대로 판단한 사업이지만 재원은 한정돼 있다. 따라서 대규모 사업일수록 정부가 그 사업에 투자할 가치가 있는지, 실현 가능성과 타당성을 면밀히 판단해야 한다. 그 첫 단추가 바로 예비 타당성 조사다. 예산 낭비를 막고 재정 운영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꼭 필요한 절차지만, R&D 분야는 SOC 등의 타 분야와 달리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에 차별화된 조사 방식이 필요하기도 하다.

지난해 말에 국가재정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내일 17일부터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국가 R&D 사업에 대한 예비 타당성 조사를 맡게 됐다. 과학기술 정책을 세우고 주요 R&D 예산을 배분·조정하는 부처의 장관으로서, 국민의 더 나은 삶을 상상하며 착수하는 국가 R&D 사업이 기대에 부응하는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이에 국가 R&D 사업에 대한 예비 타당성 조사는 다음 사항에 유념하면서 추진할 것이다.

우선, 과학기술적 전문성을 기반으로 옥석을 제대로 가리는 데 집중할 것이다. 비용 대비 편익 중심의 경제성 관점으로는 완전히 포용할 수 없는 과학기술적 상상력의 가치를, 전문가 중의 전문가들이 짚어 봐야 한다. 다양한 국가 R&D 사업의 특성에 대한 세심한 고려도 빼놓을 수 없다. 당장의 경제성을 입증하기 곤란한 사업이라도 창의적이고 도전적이며 충실히 준비된 연구 분야라면, 예비 타당성 조사의 문턱을 넘을 수 있도록 면밀히 살펴볼 것이다. 또한, 폭넓은 의견 수렴이 필요한 대규모 장기사업은 예비 타당성 조사를 요구하기 전에 현장의 전문가들과 사전에 논의하는 절차를 거쳐서 기획의 완성도를 높이도록 유도할 예정이다.

둘째, 빠른 기술 환경 변화에 민첩하면서도 유연하게 대응해 나가도록 할 것이다. 급변하는 과학기술 분야에서 예비 타당성 조사에만 1년 이상이 걸린다면 투자 시기를 놓칠지도 모른다. 도전적이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들이 시기를 놓치지 않도록 조사 기간을 평균 6개월로 줄이고자 한다. 또한, 장기간 추진되는 사업은 그림은 크게 그리되, 잘게 쪼개 보는 것도 필요하다. 한 번 예비 타당성 조사를 통과했어도 중간점검을 통해서 당초 계획과 달라진 점은 무엇인지, 계속 추진할 필요가 있는지 되짚어 보는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아울러 타당성이 부족한 것으로 판단돼 예비 타당성 조사에서 탈락한 사업이더라도 환경 변화를 반영하고 미진한 부분을 보완하면 재조사 요구를 허용하는 등 유연하게 운영할 계획이다.

스필버그 감독은 언론 인터뷰에서 영화에서 상상한 것들이 너무 빨리 현실이 돼 놀랐다고 했다. 앞으로 다가올 미래는 더 크고 빠르게, 미처 예측하지 못한 방식으로 찾아올 것이다. 우리는 그보다 한발 앞서 미래를 상상해야만 높고 거친 기술 경쟁의 파고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