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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걸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

필자는 과거 공공기관 경영평가위원으로 활동한 적이 있다. 매뉴얼은 평가위원이 해서는 안되는 일을 구체적으로 기술했다. 피평가기관이 제공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받아선 안 된다. 점심도 다음 기관으로의 이동상 불가피한 때에 한해 구내식당에서만 할 수 있고, 피감기관 관계자와 식사한 경우 평가위원의 식비는 위원들이 먼저 부담하고 후에 청구한다. 평가대상기관까지 이동하는 교통비도 마찬가지다. 공공기관 평가도 금품수수나 접대를 이처럼 철저히 금하는데, 하물며 국회의원과 피감기관과의 관계는 어떻겠는가.

국회의원 윤리강령 제3항은 ‘우리는 공직자로서 직무와 관련하여 부정한 이득을 도모하거나,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지 아니하며, 청렴하고 검소한 생활을 솔선수범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국회의원 윤리실천규범 제4조는 국회의원이 지위를 남용해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그로 인한 대가를 받지 못하도록 했고, 제5조는 법률안 기타 의안과 관련해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있는 자로부터 직간접으로 금품 기타 재산상의 이득을 취득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미국은 상하 양원에 수백 쪽의 윤리 매뉴얼이 있다. 의원들이 할 수 있는 일과 해선 안 되는 일이 상세하게 규정돼 있을 뿐만 아니라, 수천 쪽에 이르는 선례집을 통해 의원윤리를 매우 구체적으로 적시해 놓았다. 대선 후보로 거론되던 10선의 뉴트 깅리치 전 하원의장은 1998년 면세 혜택을 받는 재단을 정치활동에 이용한 것이 밝혀짐에 따라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20선의 찰스 랭글 민주당 의원은 윤리 매뉴얼에 명시된 사전 출장신청 및 기업 후원 여부 보고 없이 2007, 2008년 카리브뉴스재단이 후원하는 콘퍼런스에 참석했다. 그는 보좌관의 실수라고 변명했지만, 윤리위는 여행경비 전액을 환불하도록 결정했다. 결국 랭글은 하원 세입위원장의 자리에서 사퇴할 수밖에 없었다.

미국과 한국의 차이는 이처럼 의원윤리제도의 확립 여부에 있다. 우리 국회의 윤리제도는 구체성도, 실효성도 없다. 문제가 있어도 적당히 사과하고 눈 질끈 감고 지나가길 기다린다. 의원들은 자기 편 감싸기에 바쁘다. 이것이 적폐가 아니면 무엇이 적폐인가.

김기식 금감원장은 의원 시절, 피감기관인 한국거래소, 우리은행,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돈을 받아 세 차례나 해외출장을 다녀왔다. 그 중엔 20대 인턴 여직원을 대동한 장기 유럽과 미국 출장이 포함돼 있다. 이를 조사한 청와대는 모두 공적인 목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적법하여 문제없단다. 그러나 피감기관은 직접적 이해관계자이고, 3회에 걸친 해외출장 경비 일체를 받은 것은 명백한 의원윤리의무 위반이다. 김 원장은 20대 국회 낙천 후 더미래연구소장을 맡아 ‘미래리더아카데미’라는 수백만 원짜리 고액 교육과정을 운영하며 금융기관들을 대상으로 교육생을 모집해 이익을 취했다. 이런 김 원장의 행태에 문제가 없다고 본다면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간판을 내려야 한다.

김 원장은 2015년 정책금융공사 국정감사에서 당시 공사 직원들이 해외출장 때 기업 지원을 받았다고 지적하면서, “지원을 받고자 하는 기업과 이를 심사하는 직원의 관계를 볼 때, 기업의 돈으로 출장 가서 자고 밥 먹고 체재비를 지원받는 것이 정당한가”라고 비판했다. 지금은 국민이 준엄하게 묻고 있다. 국정감사를 받는 기관과 이를 감사하는 국회의원의 관계를 볼 때, 기관 돈으로 출장 가서 자고 밥 먹고 체재비를 지원받는 것이 정당하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