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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준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 정치학

지난 21일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회 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남·북·미 정상회담 구상을 밝혔다. 오는 4월 남북 정상회담, 5월 미·북 정상회담의 진전 상황에 따라 3국 정상회담을 열어 상징적인 종전(終戰) 선언을 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런 구상은 우물에서 숭늉을 찾는 것만큼이나 무리한 면이 있다. 많은 가정을 전제로 하고 있는 데다, 미국이나 북한과 사전에 협의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북한의 선언적 비핵화 약속만 나왔을 뿐 아직 미·북 간에 정상회담 논의가 본격화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회담 이후에 있을 일을 미리 말한 것은 너무 성급한 것이다. 남·북·미 정상이 모여 북한의 비핵화와 미·북 관계 정상화를 합의하려는 문 대통령의 평화 구상이 희망적 사고를 넘어 현실적인 성과를 내려면 먼저 다음과 같은 여건들을 갖춰야 한다.

첫째, 남남갈등을 최소화해야 한다. 문 대통령은 “남북이 함께 살든 따로 살든 서로 간섭하지 않고 서로 피해 주지 않으며 함께 번영하고 평화롭게 살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당장의 통일보다는 평화를 정착시킨 뒤에 통일을 하자는 이른바 ‘선(先) 평화, 후(後) 통일’ 구상으로 보인다. 이것은 ‘대통령은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성실한 의무를 진다’는 헌법 제66조 3항과 충돌하면서 보수 세력의 거센 저항을 불러올 수 있다.

둘째, 실패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과거 진보 정부가 추진했던 햇볕정책이 실패한 것은, 우리 정부가 북한의 이익을 배려하는 데는 적극적이었지만 주변 국가들의 이익을 고려하는 데는 너무 소홀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CVID)가 전제되지 않는 북한과의 협상은 무의미하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 정착은 남북 사이의 합의만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다. 미국의 보장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정부는 북한에 대한 관계적 이익만을 중시하고 미국이 추구하는 원칙적 이익을 무시하는 우(愚)를 범해서는 안 된다.

셋째, 정상회담 준비 단계부터 초당적(超黨的)인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 문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한 내용을 제도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는 우리 정부가 북한을 향해 불가역적(不可逆的)인 합의를 도출하겠다는 의도처럼 들린다. 그러나 북한과 일단 합의해 놓고 국회가 비준하라고 하면 성과를 기대할 수 없다. 지난 2000년 ‘남측의 연합제안(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한다’는 6·15 공동선언이 극심한 국내적 충돌을 불러일으킨 것도 같은 맥락이다.

어쨌든 야당과 언론의 협조를 얻어내지 못하면 문 대통령의 구상은 공허해질 수 있다.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은 모두가 바라는 방향이고 목표다. 그러나 방향이 옳으면 방법이 거칠어도 된다는 생각은 잘못이다. 협상엔 전략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정부는 ‘순차적 연계성 전략’을 토대로 미국과 먼저 협상하고, 그 결과를 지렛대 삼아 북한과 협상해야 유리한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 북한의 행동과 협상 상황에 대해 잘못된 가정과 기대를 갖는 오류에 빠져서도 안 된다.

정부는 조급하게 우리의 희망 사항과 협상 카드를 먼저 북측에 보이지 말아야 한다. 북한이 스스로 문제점을 인식하도록 만들고 문제 해결의 방안을 찾도록 유도해야 한다. 그래야만 비로소 문제 해결형 협상 전략이 가능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