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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삶의 정물화 / 문광훈 지음 / 에피파니

독문학자 문광훈 충북대 교수는 사회가 타율적으로 강요하는 도덕적 책임보다 개인의 행복에 대한 심미적 욕구와 나를 책임지는 자유와 고독이 개인의 삶과 사회를 훨씬 더 충실하게 만든다고 한다. 그가 꿈꾸는 삶은 시끌벅적한 저잣거리의 삶이 아니라 조용한 정물화 같은 삶이다. 여기에 이르는 길 중 하나가 아름다움에 대한 탐구이다. 속도를 내지 않고 천천히 읽어가야 하는 그의 산문집 ‘조용한 삶의 정물화’는 그 탐구의 과정이자 결과이다.

책은 남다를 것 없는 일상 속에서 펼쳐낸 사유와 모차르트·바흐의 음악, 헤세의 소설, 모네의 그림 등 예술 작품을 보며 이에 겹쳐 삶의 가치를 발견하는 글로 이뤄져 있다. 그의 시선은 현실을 넘어서는 절대적 아름다움에 가 있는데, 이는 숭고한 진실 같은 것이다.

“삶은 공적 영역에서든 사적 영역에서든, 거칠고 얇고 피상적이다. 어지러운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자신의 정신적·도덕적 독립을 유지할 수 있는가. 아름다움은 현대 사회에서 더 이상 직접 추구되기 어렵다. 현대의 경험은 파편의 경험이다. 이제 우리는 에둘러 가야 한다. 조각난 경험의 파편들을 끌어모아 붙이고 연결하여 그 전체 모습을 유추해야 한다. 느낌은 생각으로 정리되고, 생각은 말로 표현되고, 이 말은 다시 행동으로 전환돼야 하듯이 나의 감정은 너의 감정과 만나고 우리의 사고는 그들의 사고로 넓어져야 한다.”

그의 말처럼 저자는 일상이나 예술적 체험에서 보고 듣고 느끼는 파편들을 끌어모아 붙여 한 세계를 펼쳐낸다. 특히 저자는 시, 그림, 음악은 일상과 초월이 별개가 아니라 서로 겹쳐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준다며, 이 겹침을 깨달으며 하루하루 살아간다면 삶은 깊고 넓어질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일상과 초월의 겹침, 그 출발은 언제나 지금, 이곳이다.

“삶의 행복이 계란처럼 위태롭거나 시든 꽃잎처럼 쉽게 버스러지지만 우리가 시작할 곳은 언제나 지금 여기다. 어제나 내일이 아니라 바로 지금, 저기 저 먼 곳이 아니라 바로 여기에서. 그리고 다른 누구가 아닌, 바로 내가 감당하고 견디면서 관통해 나가는 것, 그것이 매일 매 순간이다”고 저자는 썼다. 그는 위대한 인물이 나와 모두를 이끄는 그런 꿈을 꾸지 않는다. 그보다는 모든 개인의 헌신을 꿈꾼다. 글은 헌신으로 가는 길이다.

“나는 정의로운 사회, 세계 평화 혹은 비폭력적 저항 같은 거대한 이념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 글을 쓴다. 나의 어깨를 다독이고 위로하며 격려하기 위해 쓴다. 글은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한 싸움의 필연성에서 온다. 주어진 일상을 존중하며 그 일상에 헌신하는 것, 그러면서 조금씩 쇄신해 가는 일만큼 기쁜 것은 아마 드물 것이다. 하루하루 충실히 사는 사람의 사회적 삶이 공허할 리 없을 것이다.” 224쪽, 1만2800원.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