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사이버 안보는 전통적 안보와는 다른 프레임을 가지고 있지만, 총체적 국가안보의 측면에서 양자가 복합적으로 검토되고 준비돼야 한다. 사진은 미 국방부 인터넷 홈페이지의 사이버 안보 페이지 중 캡처.

‘버추얼 창과 그물망 방패’ 펴낸 김상배 교수

“한국, 실재한 위협으로부터
사이버 공격받는 유일 국가”

전통안보式 방어로는 한계
‘그물망 방패’짜는 발상 필요

주변 4强·국제기구와 협력
법·제도 복합적 대응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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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국내 주요 방송사와 금융사 전산망 6곳을 마비시킨 3·20 사이버 공격, 2014년 원자력 시설을 겨냥한 한국수력원자력 해킹사건, 2016년 안보 근간인 국방망 해킹사건…. 한국은 이외에도 적지 않은 사이버 공격을 당했으나 북한 소행으로 ‘추정’만 해왔다. 다국적 컨설팅 회사인 딜로이트가 2016년 발표한 ‘아태지역 국가보안 전망 보고서’는 이 지역 18개국 중 한국을 사이버 공격에 가장 취약한 나라로 분류했다. 자타가 공인하는 ‘정보기술(IT) 강국’ 한국은 왜 사이버 공격에 취약할까?

사이버 안보는 오늘날 국제정치학의 핵심논제이자 국가안보 전략의 주요 사안이다. 국내 정치학자로선 드물게 정보혁명 시대의 네트워크 세계정치를 연구해온 김상배(왼쪽 사진)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가 최근 펴낸 ‘버추얼 창과 그물망 방패’(한울아카데미·오른쪽)는 사이버 안보를 둘러싼 세계정치의 구조와 동향을 분석하고, 우리의 미래 국가전략을 고민하는 책이다.

김 교수는 7일 문화일보와의 통화에서 “전 세계적으로 한국은 ‘식별할 수 있는’ 위협으로부터 적지 않은 사이버 공격을 받는 유일한 나라”라며 “그런데도 다른 나라들이 제도와 국가 전략 차원에서 대비하고 있는 것에 비해 우리는 뒤처져 있다”고 우려했다. 책의 제목은 고사성어 모순(矛盾)에서 유추했다. ‘버추얼(virtual)’은 ‘실재하지만 드러나지 않는 현상’을 말한다. 사이버 공격은 국가나 영토, 우방과 적국, 국가 행위인지 민간인지조차 불명확해 실체와 주체를 판별하기가 쉽지 않다. 의도된 외부 공격인지 시스템 오작동인지도 구분이 어려울 수 있다. 한마디로 여러 개 창을 여러 개 방패가 막아야 하는 ‘복잡성’을 지녔으며, 기술적으로 완벽한 방화벽을 치는 것이 불가능해 공격이 방어보다 유리한 게임이다.

어떻게 막아야 할까. 김 교수는 “철벽 방어를 목표로 ‘벽돌집’을 짓는 전통안보론의 방어 개념은 사이버 공격에 유효하지 않다”며 “지푸라기와 나뭇가지를 모아 ‘그물망(network)’을 짜듯, 복합적인 발상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여기서 ‘그물망’은 아무리 촘촘히 방어망을 짜도 빈틈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고육지책의 의미를 담고 있다. 또 하나, 사이버 공간의 안보는 국가 이외에 민간, 주변국, 국제기구 등의 다양한 메커니즘을 빌려서 ‘그물망’을 짜야 한다는 의미도 있다. 즉, 기술과 인력, 국방 역량을 강화하는 것뿐 아니라 법·제도 정비를 비롯해 외교활동을 포함하는 복합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기술이나 공학 쪽에서 방어벽을 촘촘하게 만들고 방어를 위한 공격 역량을 갖추는 것이 우선 중요하다”고 전제하고 “이를 위해 국내의 법이나 제도로 사이버 공격에 대비할 수 있는 추진 체계를 다듬는 게 시급한 과제”라고 강조한다. 예컨대 최근 세계 각국은 기술적인 차원에서 방화벽을 구축하고 재난관리시스템을 마련하기 위한 법·제도를 공세적으로 강화하고 있지만, 정작 사이버 위협에 적나라하게 노출된 한국은 국내 정치에 발목이 잡혀 지난해 1월 정부가 발의한 ‘국가사이버안보법’이 국회에 계류돼 있다. 그 법을 통해 권한이 강화될 국가정보원이 ‘빅브러더화’될 것을 우려하거나 프라이버시 침해를 제기하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우리가 가진 정치·사회의 독특한 경험 때문에 이 문제가 정치화돼서, 여야는 물론 국가와 시민사회가 합의를 못해 법적·제도적 대비가 늦춰지는 것이 문제”라고 우려한다.

주변국과 국제기구의 사이버 안보 규범을 만드는 작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사이버 안보 협력도 강화해야 한다. 김 교수는 “북한 핵 문제는 물론 미국과 중국 등 한반도 주변 4강과의 전통적인 안보 이슈는 사이버 안보와도 밀접하다”면서 “‘전통’과 ‘사이버’를 복합적으로 보려는 시각이 기술 진보로 급변하는 새로운 국제정치 질서에 맞춰 국가전략을 준비하는 데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사이버 질서의 새로운 문명에 대해 우리가 4차 산업 경쟁력만으로 논의하기보다 ‘신흥안보’의 국가전략으로도 관심을 갖기 바란다”고 말했다.

엄주엽 선임기자 ejyeob@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