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性범죄=정치적사형선고’ 의미
86세대 대표주자서 나락으로

안희정 충남지사가 자신의 비서를 성폭행했다는 의혹에 대해 6일 SNS를 통해 “저의 어리석은 행동에 대해 용서를 구한다. 합의에 의한 관계였다는 비서실의 입장은 잘못”이라고 인정했다. 여권 내에서 ‘합리적 진보’라는 평가를 받으며 차기 대권에 가장 근접한 86세대 대표주자로 여겨졌던 안 지사는 이제 정치무대에서 불명예스럽게 퇴장하는 것은 물론 사법 처리될 위기에까지 처했다.

안 지사의 성폭행 의혹을 둘러싼 법적 공방이 어떻게 결론 나든 상관 없이 그가 정치적으로 재기하기는 불가능할 것이라는 데 여권 인사들도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전날(5일) 의혹이 불거진 지 1시간 만에 심야 최고위원회의를 열어 안 지사에 대해 출당 및 제명 방침을 확정하고, 이날 오전 당 젠더폭력대책 태스크포스(TF) 회의 등을 통해 강력 대응을 천명한 것은 이번 사안의 엄중함을 반영한 결과라는 평가가 나온다. 민주당은 이날 오전 열릴 예정이었던 정례 원내대책회의를 취소하고 상황 수습 방안을 모색했다.

19대 대통령선거 민주당 후보 경선 당시 안 지사를 도왔던 한 중진 의원은 이날 통화에서 “안희정처럼 참신하고 깨끗한 이미지의 정치인은 이번처럼 도덕적으로 흠집이 나는 순간 더 큰 역풍을 맞을 수밖에 없다”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안 지사의 다른 측근도 “자기 절제가 강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그 이면이 드러난 것”이라며 “정치인에게 성범죄란 ‘정치적 사형 선고’나 다름없다. 재기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손혜원 민주당 의원은 전날 SNS를 통해 “정치인 안희정은 오늘로 끝이다. 너무 허탈하다”며 “큰 꿈을 꾸고 있던 사람이 맞는지 믿을 수가 없다. 오늘로 그를 지운다”고 말했다.

이로써 지난 1989년 김덕룡 통일민주당 의원 보좌진으로 입문한 ‘정치인 안희정’의 굴곡 많은 30여 년 역정은 오욕 속에 끝나게 됐다. 안 지사는 노무현 전 대통령 당선의 일등공신으로 친노(친노무현) 그룹 핵심 실세로 불렸으나, 노무현 정부 당시 불법 대선자금 수수 혐의로 구속됐다. 이후 이른바 폐족(廢族)으로 몰리면서 “생살까지 벗겨내는 고통의 시간을 보냈다”(2009년)고 호소하는 등 정치적으로 궁지에 몰리기도 했다. 18대 총선에서 고향인 충남 논산에 출마하려 했지만, 공천 배제 기준에 걸리는 등 수차례 정치적 풍파를 겪었다. 역경을 딛고 2010년 충남지사에 당선된 뒤 2014년 재선에도 성공하며 충남도민들의 지지를 받았다. 2017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출마해 당시 문재인 후보에 이어 2위를 하며 화려한 날개를 달았으나 결국 한순간 나락으로 떨어지게 됐다.

박효목 기자 soarup624@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