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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인구 절벽과 초고령화 사회 - ⑤ ‘세계최저’ 출산율 원인과 해결책

작년 신생아數 35만7700명
합계출산율 1.05명 세계꼴찌

혼인 건수 7년째 감소추세
첫애 출산연령도‘세계최고’
男가사분담은 OECD 평균이하
출산한다해도 육아는 여성 몫
‘워라밸’ 이룰 근본적 대책 필요

“한국에 드리운 위기의 그림자는 북한의 미사일과 핵무기가 아니라 이미 터지기 시작한 인구감소 폭탄이다.” 미국의 ‘뉴욕타임스 매거진’이 지난달 21일 ‘한국의 가장 무서운 적: 인구’라는 제목의 글에서 언급한 내용이다. 이 매체는 “저출산·고령화가 한국 사회에 미칠 파장은 엄청나게 파괴적(devastating)일 것”이라며 “앞으로 노동력 부족은 한국 경제와 연금 체계에 상당한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진단했다.

출산율이 갈수록 악화하면서 우리나라가 건국 이후 처음으로 ‘합계출산율’(15~49세 여성이 가임 기간에 낳는 자녀 수) 세계 최하위 국가가 될 위기에 처했다. 지난달 28일 통계청은 2017년 태어난 아이가 처음으로 40만 명 아래(35만7700명)로 떨어지면서 합계출산율이 역대 최저인 1.05명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종전 최저치였던 2005년(1.08명)보다 더 떨어진 수치다. 2016년 한국은 합계출산율 1.17명으로 대만과 함께 나란히 ‘세계 공동 꼴찌’를 기록한 바 있다. 아직 대만 정부에서 지난해 합계출산율을 공식 발표하지 않아 결과를 속단하기는 어렵지만, 대만 언론이 1.13명 정도로 예상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한국이 ‘단독 꼴찌’할 공산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기존 인구 규모를 계속 유지하려면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은 최소 2.1명은 돼야 한다. 아기 울음소리가 줄면서 출생아 수에서 사망자를 뺀 자연증가 인구도 7만2000명에 그쳤다. 전년(12만5400명)보다 5만3400명이나 줄어 1970년 이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이 같은 최악의 저출산 원인으로 아이를 낳아도 키우기 어려운 환경(보육·교육·주거 문제 등)과 함께 젊은층에 급속히 확산하고 있는 ‘비혼(非婚)’ 문화 등을 꼽는다. 비혼 문화는 안정적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청년실업, 일·생활 균형(워라밸·Work & Life Balance)이 어려운 직장문화에 대한 회의론, 결혼 및 출산이 꼭 필요하지 않다는 사회인식 변화와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다.

◇가속 페달 밟는 ‘비혼 사회’ = 합계출산율이 1명에 근접한 국가는 대만(2009년 1.02명·2010년 0.89명)을 제외하고는 전무하다. 대만도 사실 특수한 사례에 해당한다. 당시 대만에서는 2009년이 ‘혼인하면 나쁜 해’로 인식돼 혼인 건수가 급감했다가 2011년부터 1.1명으로 급증했다. 대만과 달리 한국의 저출산 문제는 복합적인 문제로부터 기인한다. 청년층의 취업난, 가임 여성 감소, 난임 확산, 여성의 일·가정 이중 부담, 영유아 사교육비 급증과 같은 교육환경 악화 등 다수의 제도적·사회적 요인이 복잡하게 뒤섞여 있다는 평이다.

이봉주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6일 “이제 단순히 출산장려금을 주는 것으로는 저출산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인식과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며 “보육서비스를 무료로 해준다 해도 정시 퇴근이 안 되는 열악한 근무환경에서 누가 결혼해 아이를 낳겠는가”라고 지적했다. 저출산 대책의 근본적인 전환이 필요하다는 충고다.

보건사회연구원은 이 중 출산율 하락의 가장 직접적 원인으로 ‘혼인 건수 급감’을 꼽는다. 지난해 30대 초반 출산율(10만 명당 아기 수)은 97.7명으로, 전년(110.1명)보다 크게 떨어졌는데 기혼여성 출산율이 2.23명임을 고려하면 ‘비혼(非婚) 여성’ 증가가 출산율을 떨어뜨리는 최대 원인으로 분석되기 때문이다. 통계에 따르면 혼인 건수는 2011년 32만9087건에서 7년째 감소해 지난해 26만4600건으로 떨어졌다. 일각에서는 선진국처럼 결혼하지 않고도 출산하는 ‘비혼 출산’ 문화를 장려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 ‘비혼 출산율’은 39.9%(2014년 기준)로, 한국(1.9%)보다 21배나 높다. 프랑스의 경우 1999년부터 결혼보다는 제한적인 법적 권리와 의무가 주어지는 ‘공동생활약정’(PACS)을 시행하고 있다. 프랑스의 비혼 출산비율은 56.7%로 OECD 평균보다 20%포인트 가까이 높다.

◇‘만혼’·‘독박 육아’의 늪 = 한국 남녀의 결혼 연령이 늦어지면서 첫 아이를 갖는 나이도 지난해 31.6세로 세계에서 가장 높아졌다. 이지연 통계청 인구동향과장은 “20대 고용·취업여건의 악화, 부동산 가격 상승에 따른 주거 문제까지 겹쳐 저출산·만혼(晩婚) 양상이 심화하고 있다”며 만혼·비혼 가구를 위한 고용·주거 대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여성의 ‘독박 육아’ 문제도 넘어야 할 산이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16년 여성(15~64세) 고용률은 56.2%로 2006년(52.5%)에 비해 3.7%포인트 상승했다. 같은 기간 남성 고용률은 74.7%에서 75.8%로 1.1%포인트 올랐다. 여성의 고용률이 남성보다 3배 이상으로 오른 셈이다. 이렇게 여성의 사회 참여율은 크게 늘고 있지만, 정작 육아 문제에 대한 인식은 크게 개선되지 않고 있다. 지난해 고용부가 OECD와 한국노동패널 조사를 비교한 결과에 따르면, 2014년 기준 우리나라 남성의 가사 분담률은 16.5%로 조사 대상 OECD 26개국 평균(33.6%)을 훨씬 밑돌면서 최하위를 기록했다. 이슬람권인 터키(23.6%)도 한국보다 높았다.

◇정부, ‘액션플랜’ 내놓는다지만… = 정부는 저출산 극복을 위해 일과 생활의 균형을 이루는 방안을 최우선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장시간 근로로 부모가 아이와 함께하기 어렵고, 아빠가 육아에 참여하기 어려운 현실에선 출산율을 끌어올리기 힘들다는 판단에서다. 정부는 저출산 극복을 위한 최우선 과제로 워라밸과 관련한 구체적 계획을 마련해 3월 말 발표할 예정이다. 기획재정부는 5년 단위의 국가재정운용계획에 저출산에 관한 특별 대책을 마련하고 문재인 대통령 임기 내에 저출산 문제가 해결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명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몇 년 전 OECD에서 출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연구한 결과 ‘답이 없다’가 답으로 나왔다”며 “정부가 출산만을 위한 단편적인 정책을 내놓기보단 어떻게 하면 우리 사회가 더 살 만하고 개인이 행복할 수 있을지 큰 그림을 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저출산 대책은 결국 삶의 질 개선과 연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윤홍식 인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1974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스웨덴 경제학자 군나르 뮈르달의 말을 인용하며 “우리는 출산 장려 정책이 아닌 평범한 사람이 직면한 삶의 어려움에 대응해야 한다”며 “출산율은 삶의 질에 의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이해완 기자 parasa@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