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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율 명지대 교수 정치학

오늘 오후에 정의용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국가정보원장을 비롯한 5명의 특사단이 북한으로 떠났다. 청와대는 이들 특사단의 방북이 김여정의 방한에 대한 답방의 성격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을 볼 때 이들 특사가 단순한 답방을 위해 북한으로 갔다고 볼 수만은 없는 게 사실이다. 실제로 청와대 관계자는 북한의 최고위급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들어보는 게 이번 방북의 목표가 될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진다. 그래서 이번 특사 파견은 문재인 정부 중재외교의 중대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2003년 1월 김대중 대통령은 임동원 장관을 대북 특사로 파견했다. 파견 목적은 북한에 핵 개발 포기 선언을 촉구하고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선언 철회 등을 요구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김정일은 임동원 특사를 만나주지 않았다. 핵무기를 포기할 생각이 전혀 없었고, 핵 관련 협상은 미국과 하는 것이라는 자신들의 입장을 분명히 하려 했기 때문이다.

이번도 상황은 비슷하다. 북한이 핵 포기를 선언할 리 없기 때문이다. 우리로선 상대의 말을 들으러 간다고는 하지만, 중재하려면 북한에 비핵화를 촉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만일 이런 의도를 북한이 간파한다면, 2003년처럼 김정은이 특사단을 만나주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대북 제재 완화 등의 카드를 쓸 수 있으면 문제는 달라진다. 김정은이 가장 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우리가 그런 제안을 할 위치도 아니고 능력도 없다는 데 있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생각할 수 있다. 김정은이 우리 특사단을 만나고 그 자리에서 역으로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동결(凍結)을 제안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 경우 북한은 반대급부도 반드시 요구할 것이다. 그 반대급부란, 한·미 연합훈련의 중단일 것이다. 만일 상황이 이렇게 돌아간다면 특사단으로서는 고민을 안고 돌아오는 셈이 된다. 얼핏 보면 핵 동결과 미사일 발사 중단이 북한 비핵화의 첫걸음처럼 비칠 수도 있겠지만, 이는 또 다른 문제들의 출발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우선, 핵 개발이 어느 정도 완료된 시점의 북핵 동결은 핵 용인으로 비칠 수도 있고, 북한이 그토록 주장하는 핵보유국으로서 미국과 ‘핵군축회담’을 하는 첫 단계일 수도 있다. 그리되면 일본 등 많은 국가가 자국도 핵무장을 하겠다고 나서는 상황이 될 수 있다. 이른바 핵 도미노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인데, 이는 미국이 가장 경계하는 시나리오다.

그리고 미사일 동결의 경우, 현재로써는 북한이 미국을 달랠 수 있는 유일한 카드라고 할 수 있는데, 장거리탄도미사일(ICBM)이 미국을 겨냥하는 것임을 고려하면 미국이 반길 수도 있다. 하지만 핵 동결과 ICBM 개발 중단을 미국이 함께 받아들이긴 힘들 것이다. 그렇다고 핵 포기와 ICBM 동결을 북한이 들고나올 리도 만무하다. 그러므로 결국 중재외교의 길을 트기 위해 특사단이 방북했지만, 오히려 고민거리를 이고 올 가능성도 지금으로써는 배제하기 힘들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대북 특사단보다는 동맹 강화 차원에서의 대미(對美)특사가 먼저라는 말이 나오고, 또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직접 만나는 자리가 먼저 시급히 만들어져야 한다는 말들이 나온 것이다. 중재외교라는 것은 한·미 동맹의 기초 위에서 제대로 위력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지금으로써는 대북 특사단이 어떤 과제를 안고 돌아올지 지켜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