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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어수업 금지 ‘원점’

“사교육은 못잡으면서…” 비판
교육부-복지부 협의도 불충분

정부, 고액학원 등 단속 강화
학교 영어교육 내실화 추진

정부가 유치원 방과 후 및 영어수업 금지 정책을 발표한 지 20여 일 만에 뒤집으며 원점에서 재검토한다는 방침을 밝힘에 따라 설익은 정책을 충분한 국민 의견 수렴 없이 추진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부처 간 의견도 엇갈리는 등 정책 혼선이 이어지면서 신중한 정책 접근이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반면, 늦은 감은 있지만 사교육 문제 해소를 위한 철저한 관리와 대책은 빈틈없이 추진돼야 한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교육부가 16일 유치원 방과 후 영어수업 금지 방침을 유예하겠다고 밝히면서 현장의 심각한 논란은 일단락되는 모양새다. 교육부가 돌고 돌아 결국 원점으로 회귀한 데에는 학부모와 교육단체들의 거센 반발이 주효했다. 학부모들은 특히 “고액 유아 영어학원은 내버려둔 채, 서민들의 유치원 영어교육만 금지한다”며 형평성 문제와 부작용을 집중 제기했다. 지난해 12월 27일 교육부가 유치원 방과 후 영어수업 금지를 발표하자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이를 반대하는 청원이 빗발쳤다. 예상보다 거센 반발에 교육부는 발표 하루 만에 “확정된 바 없다”며 입장을 번복했다. 시행시기 유예 방침에도 학부모들의 반발이 누그러지지 않자 이제는 청와대와 여당을 중심으로 유치원 방과 후 영어수업 금지에 대한 회의적인 반응이 흘러나왔다.

여론의 압박을 받은 여당 의원들은 지난 9일 김상곤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과의 만찬 자리에서 이런 우려를 전달했고, 교육부는 결국 ‘원점 재검토 후 내년 초 개선방안’이라는 최종 입장을 정리했다. 어린이집 정책을 담당하고 있는 보건복지부와의 협업이 불충분했던 점도 한 이유가 됐다.

구본창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국장은 “유치원 방과 후 영어수업 금지를 발표하기에 앞서 영어 사교육 규제방안과 초·중·고교 영어교육 개선방안 등이 종합적으로 고려됐어야 한다”며 “종합적인 검토 없이 설익은 정책을 쏟아내다 보니 정부 정책 발표 이후 100만 원이 넘는 유치원생을 대상으로 한 영어학원이 판을 치는 혼란이 초래됐다”고 지적했다.

김재철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대변인도 “유치원 방과 후 영어수업 금지와 같이 학부모 등의 반대가 예상되는 정책을 결정할 때는 충분히 의견 수렴을 하고 반대 측을 설득하는 과정이 선행돼야 한다”며 “이 같은 절차 없이 무작정 정책을 발표하고 반대에 부딪혀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고 하면 현 정부의 교육정책 전반에 대한 신뢰성은 추락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교육부는 내년 초 최종 개선방안을 마련하는 것과 동시에 이달부터 과도한 비용을 받거나 영어학원과 연계해 편법 운영을 하는 유치원 방과 후 수업부터 단속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유아를 대상으로 한 영어학원 편법, 불법 운영에 대한 단속도 당장 시행키로 했다.

김상곤 부총리는 “영어 적기 교육을 위해서는 과도한 영어 사교육, 불법 관행부터 개선해야 한다는 국민의 요청을 즉시 반영하겠다”며 “영어교육과 관련한 국민의 다양한 목소리를 담아 영어교육 전반에 대한 내실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정유진 기자 yooji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