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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재영 건국대 교수 부동산학

정부가 오랫동안 뜸을 들여온 주거복지 로드맵을 29일 발표했다. 2022년까지 공공임대주택 65만 호 등 총 100만 호의 주택을 공급하며, 이를 위해 40여 곳의 택지지구를 새로 개발하기로 했다. 세부적으론 청년·신혼부부·고령층 등 계층별 지원을 위한 다양한 분양 및 임대주택과 금융 상품을 도입한다. 특히, 청년들이 내집을 마련하거나 전셋집을 구하는 데 쓸 수 있는 청약통장, 고령층을 위한 ‘연금형 매입임대주택’, 신혼부부를 위한 ‘신혼희망타운’ 등이 눈에 띈다.

로드맵의 기조는 계층별 필요와 경제력에 맞는 충분한 공급으로 시장을 안정시킨다는 것으로, 집권당과 정부가 수요-공급의 원리를 마침내 받아들인 모습이 신선하고 반갑다. 다만, 공공임대주택과 관련해 정부 재정과 주택도시기금, 그리고 LH의 재원 조달 능력을 과대평가하고 있는 것 같아 걱정이고, 택지를 마련하기 위한 갈등이 예상된다. 그럼에도 주거 문제가 사회 갈등의 주요 사안으로 떠오른 마당에 로드맵의 성공을 기원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배경에서, 몇 가지 고려해야 할 사항을 제시해 본다.

첫째, 청년·신혼부부·고령층 등 특정한 인구 특성을 가진 집단을 위한 독특한 프로그램도 일부 필요하지만, 이들 프로그램은 부차적이어야 한다. 예를 들어, ‘신혼희망타운’이 조성되면, 이곳에서 비슷한 때 많은 아기가 태어나 보육시설을 같이 이용하고, 같은 때에 모두 초·중·고를 다니고, 부부들은 노인이 돼 동시에 요양시설을 필요로 할 것이다. 거주민 모두가 같은 때 같은 서비스를 이용하고 또 졸업함에 따라 한때 필요했던 서비스가 그 후에 모두 문을 닫는 일이 벌어진다. 생활 서비스가 안정적으로 공급되고 지역사회도 활기를 띠기 위해선 청년·신혼부부·중장년·고령층이 섞여 살아야 한다.

둘째, 인구 특성보다는, 소득을 기준으로 해서 지원이 필요한 모든 사람을 위한 보편적 프로그램이 중요하다. 지난 몇 년 간 청년 주택에 대한 관심이 높지만, 청년들이 양질의 주거를 누리지 못하는 것은 소득이 낮기 때문이다. 그런데 소득이 낮다면 중년이나 노년도 주거생활에 어려움을 겪는다. 중년·노년 저소득자보다 청년 저소득자를 특별히 우대할 이유는 없다. 청년들의 의식과 생활 패턴이 중년, 노년과 달라서 주택의 형태, 위치, 제공되는 시설과 서비스가 달라지는 건 당연하겠지만, 청년층에만 차별적으로 많이 지원하는 것은 공평하지 않다.

셋째, 공공임대주택 65만 호는 역대 정부의 정책 기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국민임대주택 건설을 시작할 때부터 전체 주택스톡의 10% 정도를 장기 공공임대주택으로 건설, 공급한다는 비공식 목표가 설정됐다. 그런데 이 목표의 적정성에 대해선 논란의 여지가 많다. 공공임대주택은 건설부터 운영에 걸쳐 오랜 기간 혈세가 계속 들어가는 비싼 프로그램이다. 조만간 장기 공공임대주택이 100만 호 이상 완공될 텐데, 여기에 65만 호를 더 짓기 전에 종합적인 조사·평가가 이뤄지고 이를 바탕으로 추후의 정책 구상이 이뤄졌으면 좋겠다. 많은 세금을 들여 도움이 절실한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지원을 하고 있는지 짚어볼 때가 됐다.

끝으로, 저소득층을 위한 정부 지원이 꼭 필요하다 해도, 내집을 마련할 수 있고 또 원하는 사람들이 쉽고 싸게 분양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게 여전히 중요한 주택정책 목표다. 자기 힘으로 노력하고 저축해서 집을 장만하는 건실한 중산층이 우리 사회의 튼튼한 허리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