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준칙’무너뜨린 나쁜선례
“내년 3조지만 2020년 10조”
중·장기대책없이 퍼붓기 우려

정부가 9일 내놓은 ‘일자리 안정자금 시행 계획’은 민간 기업의 최저 임금 인상을 위해 국민의 혈세(血稅)를 투입하는 나쁜 선례를 만들었다는 측면에서 논란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대로 오는 2020년에 최저 임금을 1만 원까지 올리기 위해서는 내년에 3조 원 정도로 시작한 재정 투입 규모가 2020년부터는 10조 원 정도로 늘 수밖에 없어 “예산 당국이 스스로 ‘재정준칙(財政準則)’을 무너뜨린 최악의 정책”이라는 혹독한 비판이 나오고 있다.

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정부가 내년에 최저 임금 인상에 따른 중소·영세기업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지원하는 자금(일자리 안정자금)은 2조9708억 원에 달한다. 옛 재정경제부 차관을 지낸 ‘예산 전문가’ 김광림 자유한국당 의원은 “시작은 내년 3조 원 정도지만, 2020년에 최저임금이 1만 원이 되면 10조 원 정도로 재정 부담이 늘어난다”고 지적했다. 2021년 이후에도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부담 전부를 중소·영세기업으로 떠넘기지 않는 한, 달라지는 것은 없다.

하지만 정부는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중·장기 재정 필요액조차 내놓지 않고 있다. 앞으로 몇 년 동안, 얼마나 많은 돈을 투입해야 하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세금을 무조건 퍼붓고 있는 형국이다.

민간 기업의 최저 임금 인상을 위해 세금을 직접 투입한 사례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기재부가 전 세계 사례를 파악한 결과, 프랑스 등 일부 국가에서 최저 임금 지원을 위해 세제 혜택을 준 경우는 있다. 하지만, 재정에서 직접 지원한 사례는 사회주의 정당이 집권한 유럽 국가 중에서도 단 한 차례도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일자리 안정자금까지 포함하면 내년 일자리 예산이 올해보다 29.8%(5조886억 원) 폭증하는데도, 지난 8월 내년 예산안을 발표할 때 12.4%(2조1178억 원) 늘어난다고 ‘거짓말’을 한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문화일보 11월 6일 자 8면 참조)

김동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최저 임금 인상을 세금으로 보전하는 방안은) 한시적으로 하는 게 원칙이지만, 한 해 해보고 그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내년뿐만 아니라 그 뒤로도 일정 기간 민간 기업의 최저 임금 인상을 세금으로 보전하는 일이 계속될 것이라는 뜻이다.

민간 경제연구소 고위관계자는 “민간 기업의 최저 임금 인상을 위해 세금을 투입하는 것은 복지 제도처럼 한번 시행하면 멈추기 어렵다”며 “내년에는 지방 선거도 예정돼 있는데 지원을 중단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조해동 기자 haedo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