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1월 10~11일 베트남에서 열리는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기간 중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의 정상회담이 열린다고 한·중 양국이 31일 발표했다. 사드 갈등으로 지난 15개월 동안 경색됐던 관계가 상당 부분 정상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경제 교류나 북핵 문제 협력 필요성 등을 고려할 때 일단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결코 박수를 칠 수 없다. 관계 정상화에 급급해 안보의 기본 원칙을 훼손해서는 안 되는데, 문재인 정부가 안보 주권(主權)을 포기한 것과 다름없는 정황들이 짚이기 때문이다.

외교부는 31일 ‘한·중 관계 개선 협의 결과’라는 자료를 통해 “중국 측은 미사일방어(MD) 구축, 사드 추가 배치, 한·미·일 군사협력 등과 관련된 입장과 우려를 천명했다”면서 “한국 측은 그간 공개적으로 밝혀온 관련 입장을 설명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강경화 외교장관은 30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사드 추가 배치를 검토하지 않고 있고 △미 MD에 참여할 계획이 없으며 △한·미·일 안보협력이 군사동맹으로 변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분명히 말씀드린다”는 표현까지 사용했다. 문 대통령의 중국 특사로 시 주석을 예방했던 박병석 의원의 3개항 질의에 대한 답변이었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즉각 “그 3가지 표명을 중시한다”는 식으로 재확인했다. 그동안 막후 협상을 통해 도출한 결론으로 보인다. 그러나 강 장관이 밝힌 3가지 입장은 중국의 부당한 사드 보복과 이로 인한 피해에 대해서는 제대로 따지지 못한 채 중국 요구에 일방적으로 굴복한 것이나 다름없다.

첫째, 사드는 북한의 미사일 도발로부터 주한미군 및 한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배치된 방어적 무기로 한·미 동맹의 결정사항이다. 북핵 위협이 고조될 경우엔 사드 추가 배치가 불가피할지 모른다. 그럴 가능성까지 스스로 포기한 것이다. 또, 중국이 대놓고 보복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것과 다름없다. 둘째, MD 문제는 미·중의 전략적 입장과 직결된 중대 현안이다. 한국형 미사일방어(KAMD)와 MD를 불가피하게 연계해야 할 가능성도 있다. 최소한 중립이라도 지켜야 하는데, 중국 편을 든 셈이다. 셋째, 한·미·일 안보 협력의 발전 방향은 한반도 정세에 따라 가변적이다. 중국이 북핵 도발을 해결하면 한·미·일 안보협력은 물론 군사동맹은 거론할 필요도 없는데, 중국은 이 문제는 쏙 빼고 한국의 장기 전략에까지 족쇄를 채운 셈이 됐다. 정부는 중국의 무차별 사드 보복에 대해 사과 및 재발 방지 요구도 못하고 한·중 정상회담, 문 대통령의 연내 방중과 시 주석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석 등을 위해 굴욕 협상을 한 셈이다. 심각한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