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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수 이화여대 행정학과 교수

우리나라 공공부문에서 근절돼야 할 행태 중 가장 영향력이 큰 것 두 가지를 들라고 하면 필자는 주저 없이 공무원의 잦은 자리옮김(순환보직)과 공공기관의 낙하산 인사 관행을 든다. 공무원의 순환보직으로 인한 전문성 확보의 한계는 인사혁신처에서도 문제를 인식해 전문관 제도를 신설해 한 자리에 최소 3년은 보임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 개선이 이뤄졌다. 하지만 아직도 전문관 제도를 활용하는 비중은 극히 미미하다. 정부가 의사결정을 하고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사안은 전문성이 필요한데 담당자는 1년을 채 못 채우고 다른 자리로 옮겨가곤 하는 공직의 순환보직 제도는 반드시 개선돼야 한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300여 공공기관과 여기에는 포함되지 않지만 정부가 지배력을 행사하는 민간기관(예를 들면 무역협회)의 기관장은 좌불안석이 된다. 임기와는 상관없이 새 정부의 신임을 확인하는 절차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받아들이는 관행이 정착돼 왔다. 공공기관의 낙하산인사는 적폐 내지는 한국병이다.

첫째, 공공기관의 경우 설립 취지와 기능이 주어져 있고 기관장은 모험적인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창업자(CEO)라기보다는 설립법과 정부의 정책 등을 통해 기관에 주어진 미션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그리고 효율적으로 달성하는가 하는 임무가 기관장의 책임으로 규정되는 최고관리자(COO)이기 때문이다. 자율성이 보다 강조되고 수익 창출이 강조되는 공기업도 그러하지만, 예산이 정부의 출연금을 통해 거의 대부분 조달되는 준정부기관들의 경우 기관장의 임무는 정치권의 향배하고는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둘째, 기관장의 임기는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공운법)에 명시적으로 3년이 보장돼 있다. 법치주의를 표방하는 우리나라로서, 그리고 매년 공공기관의 기관장과 기관에 대해 경영평가를 하는 성과관리가 체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서, 임기가 남아 있음에도 중간에 기관장을 그만두게 하는 것은 엄밀한 의미에서 법치주의에 위배된다. 그런데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여러 가지 이유를 붙여 기관장의 임기를 무시하는 관행을 유지해왔고 지금도 유지되고 있다.

셋째, 세계경제포럼(WEF)이나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매년 조사해 발표하는 국가경쟁력지수에서 최하위를 기록하는 영역이 제도(institution)부문이다. 그 이유로는 공공부문의 투명성 부족과 낮은 신뢰, 그리고 실제와 괴리된 형식으로 인한 이중성이 꼽힌다. 공공기관의 기관장 인선과 관련해서도 공운법에서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임원추천위원회나 공공기관운영위원회의 임무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 낙하산인사가 횡행하는 것은 후진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하루아침에 켜켜이 쌓인 과거로부터의 적폐인 낙하산인사를 없애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도 문재인 정부는 촛불 정국을 통해 국민적인 열망에 기초해 적폐청산을 국정과제 1호로 내세우고 있는 만큼 과거의 잘못된 관행을 근절하는 매우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매번 국가경쟁력 보고서가 발표될 때마다 꼴찌에서부터 세는 것이 빠르다는 허탈한 심경과 국제 회의에 참가하는 우리나라 대표는 매번 바뀌는데 상대국은 계속 같은 사람이 담당해 연혁을 꿰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느끼는 안타까움으로부터 이제는 자유로워야 하지 않겠는가. 엊그제 한국무역협회장이 임기 4개월을 남기고 사임을 했다는 보도를 접하면서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