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영화 ‘동주’의 촬영지인 강원 고성군 왕곡마을에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는 북방식 전통한옥.

이미지 크게보기 전남 고흥군 소록도 내 옛 녹산초등학교에서 연희전문학교와 교토대 강의실 장면을 촬영했다.

- 영화 ‘동주’ 이준익 감독

전남 고흥 ‘소록도’, 연륙교로 이어진 섬… 아픈 역사의 현장 속으로
먹거리·풍광 보는 여행속에서 문화·건축물 음미도 해보길
윤동주 죽어있는 장면 찍은 섬… 한센병박물관 관광객에 개방

많은 사람이 긴 추석 연휴를 이용해 국내외로 여행을 떠난다. 오래전에 계획을 세우고, 교통편과 숙박을 예약한 사람도 있겠지만 휴일의 지루함을 이기지 못해 여행을 결정할 수도 있다. 갑자기 떠나려면 어디로 가야 할지, 어느 곳이 의미가 있을지 막막해진다. 급하게 가려면 아무래도 국내가 수월하다. 이런 사람들을 위해 일 때문에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는 영화감독, 방송 PD, 개그맨, 아이돌 스타 등이 추천하는 국내 여행지를 소개한다.

이준익 감독은 영화 ‘동주’의 촬영지인 강원 고성군 죽왕면 오봉리 왕곡마을과 전남 고흥군 소록도를 추천했다.

이미지 크게보기 이준익(아래) 감독이 왕곡마을에서 배우 강하늘(위 왼쪽), 박정민(위 오른쪽)에게 촬영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

송지호 뒤편에 위치한 왕곡마을에는 100년 가까이 된 북방식 전통한옥 20여 채와 초가집 30여 채가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이 가옥은 관북지방 가옥 특징인 겹집 형태로, 집마다 굴뚝 모양을 다르게 만들었고, 진흙과 기와를 한 켜씩 쌓아 올렸다. 이 마을은 지난 1988년 전국 최초로 전통마을 보존지구가 됐으며 2000년 1월 7일에는 중요민속자료 235호로 지정됐다.

이 마을에서 윤동주(강하늘)와 송몽규(박정민)가 북간도 용정에서 고등학생 시절을 보내는 장면이 촬영됐다. 이 감독은 “‘동주’ 촬영을 준비하며 전국 방방곡곡을 알아보던 중에 북방식 한옥이 남아 있는 왕곡마을을 알게 됐다”며 “남방식 한옥은 마당을 통해 대청마루와 방이 연결되는데 북방식은 마당에서 부엌을 거쳐 방으로 들어가는 구조”라고 소개했다. 그는 이어 “주로 먹거리와 풍광을 좇아 여행을 가지만 지역의 문화와 역사, 건축물, 마을의 생태계 등을 음미하면 여행이 더욱 풍성해진다”며 “수백 년, 수천 년 동안 쌓인 삶의 흔적을 바라보는 여행을 제안한다”고 덧붙였다. 왕곡마을 인근에는 달맞이가 장관인 공현진해수욕장을 비롯해 오색온천, 통일전망대, 청간정, 화암사 등의 관광지가 있다.

소록도에서는 윤동주와 송몽규가 다니던 학교 장면과 윤동주가 죽어 있는 장면을 찍었다. 서울 여의도보다 조금 큰 섬인 소록도 한가운데 국립소록도병원이 자리 잡고 있다. 1961년 소록도자혜의원이라는 이름으로 문을 연 이 병원은 일제강점기 한센병 환자들을 감금해 인권유린과 폭행을 일삼던 곳이다. 현재 500여 명의 한센병 환자가 소록도에 거주하고 있다. 고흥군 녹동에서 소록도까지 연륙교가 놓여 있고, 병원 인근 중앙공원과 한센병박물관, 주변 건물 몇 동이 관광객에게 개방돼 있다. 이 감독은 “일제강점기 건축물을 찾다가 소록도에 있는 학교를 발견했다”며 “일제강점기 때 한센병이 피부로 전염된다고 잘못 알려져 조선인 환자들을 수천 명 격리해 압박했던 곳으로 지금도 그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윤동주가 죽어 있는 것을 그의 아버지가 바라보는 장면을 단종대(일제가 수감자를 상대로 강제 정관수술을 자행한 도구)에서 찍었는데 돌침대에 누운 강하늘은 공간이 전하는 아픔에 감정의 폭이 더 깊어졌다”며 “윤동주의 아버지가 아들의 시신에 헝겊을 덮을 때 ‘서시’가 흘러나온다”고 설명했다.

이 감독은 두 곳 외에 역사적 의미가 있는 몇 곳을 더 알려줬다. 그는 “전북 군산에 가서 일본인이 남기고 간 적산가옥을 보고, 일제가 수탈한 쌀을 쌓아 놓았던 목포의 창고도 둘러보길 권한다”며 “올레길, 둘레길을 걷는 것도 좋지만 장소를 여행하는 데 머물지 말고, 시간여행을 통해 지식을 쌓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구철·김인구·안진용 기자 kc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