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전통과 현대의 표현법을 섞어 한국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작품들. 왼쪽부터 최영욱의 ‘karma’(業, 캔버스 위 혼합재료), 오만철의 ‘반추-달항아리’(백자도판), 유근택의 ‘어떤 도서관’(한지에 수묵채색). 갤러리 위·세움아트스페이스·갤러리현대 제공

“고루하고 오래 묵은 듯한 한국화에 대한 이미지를 이젠 버리세요.”

전통을 차용하되 자신만의 현대적인 표현법과 소재를 적용하여 한국미술사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는 작가들이 잇달아 등장하고 있다. 철솔로 한지를 긁어내 그 위에 그림을 그리고, 사포질로 달항아리의 질감을 한지에 살려내는가 하면 어떤 작가는 흙 위에 수묵화를 그리고, 이를 도자기로 구워내기도 한다.

서울 종로구 삼청로의 갤러리 현대에서 개인전 ‘어떤 산책’을 열고 있는 유근택은 철솔로 한지를 일으켜 세워 깊이감을 표현하고 유화붓으로 다양한 터치를 이끌어 낸다. 모기장을 소재로 한 ‘방’ 시리즈와 ‘도서관’ 시리즈 등의 작품은 그래서 멀리서 보면 두꺼운 마티에르(질감)가 인상적인 유화처럼 보인다. 그러나 가까이서 보면 한지 위에 먹과 물감 등으로 그린 작품이 분명하다. 마티에르처럼 보이는 붓의 흔적 아래에는 한지의 거친 섬유질이 생생하게 살아 있다.

이와 관련, 서울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의 이동국 부장은 “유 작가는 철솔과 같은 재료를 이용해 두꺼운 마티에르를 표현하는 등 실험적인 면모를 보이지만 철솔로 한지를 긁어내는 방법은 입체감을 중시해 칼로 파내듯이 필획을 내리긋는 서화의 근본인 골법용필(骨法用筆)을 연상시킨다”며 “먹이 지닌 정신성, 시간과 공간을 한 폭의 그림으로 담아내는 기법을 보면 전통의 현대적 표현이 아니라 오히려 전통으로의 회귀를 연상시킨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9월 17일까지.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의 갤러리 위에서 9월 4일부터 열리는 구본창·최영욱의 ‘秋, 달항아리를 품다’ 전은 사진과 회화로 달항아리를 만나는 이색 전시다.

구본창 작가는 이번 출품 도자 사진에 대해 “도자기 하나하나를 귀중한 유물이라기보다는 도자기를 빚는 사람과 감상하는 사람의 마음을 한없이 어루만져 주는 영혼의 그릇으로 여기고 마치 인물을 찍듯이 조심스럽게 촬영했다”고 표현했다.

최영욱의 달항아리 그림은 과슈물감·아크릴물감·동양화물감·젯소·돌가루 등 다양한 재료를 섞어 캔버스에 여러 번 덧바르고 말리기를 반복하며 사포질로 표면을 갈아내서 완성된 결과물로 실제 도자기와 비슷한 질감을 보여준다. 전시는 29일까지.

9월 6일부터 19일까지 서울 종로구 삼청로의 세움아트스페이스에서 초대 개인전을 여는 오만철 작가는 도자회화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 도자기의 기능성을 회화와 접목해 대중과의 소통을 꾀하는 작가다. 작가는 송(宋)대 이래 중국 도자기의 유명산지인 중국 장시(江西)성 북동부의 징더전(景德鎭)에 작업실을 마련하고 고령토로 화선지에서의 스밈과 번짐, 파묵과 발묵 등의 독특한 느낌을 도판에 구현해 왔다.

홍익대 동양화과를 마친 후 25년간 도자회화를 그려온 오 작가는 “수묵화를 그리면서 그림에 미치고, 물레를 차면서 흙에 미치고, 도자기를 구우면서 불에 미쳐 살아왔고, 지금도 일필휘지의 도자회화 작품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세상에 다시없는 희열을 느낀다”고 말했다.

오 작가의 작품은 유럽 도자기의 고장인 영국에서도 인정받아 10월 5일부터 25일까지 영국 런던 한복판 대영박물관 앞에 위치한 한컬렉션에서 지난해에 이어 또다시 초대 개인전이 열린다. 이번 전시에는 달항아리와 추운 겨울의 소나무, 대나무, 매화를 의미하는 세한삼우(歲寒三友)를 도자판에 구현한 작품 30여 점이 선보인다.

이경택 기자 ktle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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