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영화 ‘택시운전사’

극장가 ‘여름 대전’에서 맞붙은 한국 영화의 흥행 성적이 정리되고 있습니다. 21일 현재 1000만 관객을 넘어선 ‘택시운전사’(1050만3029명·위 사진)가 1위에 올랐고, 각종 논란에 휩싸였던 ‘군함도’(655만6064명·아래 사진)가 2위로 자리 잡았습니다. 손익분기점의 2배 정도 관객을 모은 ‘청년경찰’(402만7130명)이 계속 달리면 ‘군함도’ 턱밑까지 가거나 넘어설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올여름 유일한 한국 공포영화인 ‘장산범’(72만2379명)은 힘을 못 받는 모양새이며 23일 개봉하는 ‘브이아이피’도 현재까지의 흥행 순위를 뒤집진 못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예년과 같이 1000만 영화가 한 편 나왔지만 작품 하나하나를 뜯어보면 한국 영화의 위기가 심화됐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대목에 맞춰 CJ E&M(군함도), 쇼박스(택시운전사), 롯데엔터테인먼트(청년경찰), NEW(장산범) 등 국내 ‘빅4’ 투자배급사와 할리우드 직배사 워너브러더스코리아(브이아이피)에서 내놓은 ‘대표 선수’조차 최근 한국 영화의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는 어정쩡한 ‘낫 배드(Not Bad)’ 영화로 보입니다. 특히 감독들의 색깔이 전작에 비해 흐려졌거나 아예 퇴색했다는 느낌이 강합니다.

영화 외적인 부분은 거론하지 않고, 만듦새로만 작품을 짚어보겠습니다. ‘베를린’ ‘베테랑’ 등을 만든 류승완 감독의 신작 ‘군함도’에서 류 감독의 특징을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이야기를 풀어내며 후련한 결말을 내는 게 류 감독이 그동안 보여온 장점입니다. 하지만 ‘군함도’는 캐릭터들이 겉돌고, 이야기가 산만하며, 결말의 몰입도도 떨어집니다. 많은 관객에게 감동을 선사한 ‘택시운전사’도 장훈 감독의 섬세한 맛이 담기지 않았습니다. 장 감독은 ‘영화는 영화다’ ‘의형제’ 등을 통해 이질적인 인물들의 동질감을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장기를 보여왔지만 ‘택시운전사’에서는 이런 연출력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대신 관습적인 장치들이 감정의 흐름을 인위적으로 이끕니다.

‘장산범’도 전작인 ‘숨바꼭질’에서 보여준 허정 감독의 치밀한 심리묘사가 돋보이지 않고, ‘브이아이피’는 ‘신세계’의 박훈정 감독이 만든 게 맞나 싶을 정도로 단선적 캐릭터들을 엮어 잔혹한 내용을 펼쳤습니다. 신인급인 김주환 감독의 ‘청년경찰’이 그나마 연출 의도를 우직하게 밀어붙여 캐릭터물의 맛을 살렸다는 느낌이 듭니다.

잘 만들던 감독들이 왜 이렇게 된 걸까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시스템의 문제가 가장 큰 것 같습니다. 여름 대작에는 비교적 큰돈이 들어가고, 돈을 댄 주체들이 저마다 목소리를 내며 배가 산으로 갔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관객들도 실망하고 있습니다. 영화진흥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올 7월 한국 영화 관객 수는 지난해 7월 대비 절반 이하로 떨어졌고, 8월 관객 수(21일 현재)도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조금 줄었습니다.

한국 영화에서 멀어져가는 관객의 마음을 다시 잡으려면 영화인들이 절박한 심정으로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투자배급사·제작사 관계자들이 올여름 시장에서 교훈을 얻길 바랍니다.

김구철 기자 kcki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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