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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요즈음 법조계와 산업계의 분위기가 뒤숭숭하다. 추정액 ‘3조 원짜리 소송’이라는 큰 판을 앞두고 여러 예상이 난무하고 있다. 하지만 누구도 이 도박의 승부를 점칠 수 없을 정도로 오리무중이다. 분명한 것은 이 한 판 승부로 모든 게 결정된다는 것이다. 이기는 쪽은 대박, 지는 쪽은 쪽박. 마치 몇 년 전에 흥행에 성공한 영화 ‘타짜’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이 드라마 같은 일이 노사(勞使) 간에 벌어지고 있다면 믿을 것인가. 바로 기아자동차의 통상임금 소송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 다툼은 기아차 생산직 근로자들이 정기 상여금을 비롯한 각종 수당을 통상임금에 포함해 산정해 달라는 소송을 제기하면서 시작됐다. 6년 동안 지루하게 끌어오던 다툼은 이제 며칠 후면 법정에서 가려지게 된다. 문제는, 결과를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데다 워낙 거액이라 패자에겐 치명적일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노측이 승소할 경우 사측은 인건비만 최대 3조 원을 부담해야 하므로 10년 만에 적자로 돌아서게 된다고 한다. 지난해 영업이익이 2조4000억 원에 불과한 데다 중국의 ‘사드 보복’ 여파로 올 상반기 실적도 반 토막이 난 것을 보면, 단순한 엄살 같지는 않다.

통상임금을 둘러싼 논쟁은 이미 4년 전에 결론이 난 사안이다. 당시 대법원은 정기 상여금이라 하더라도 정기성·일률성·고정성이 인정되는 경우에는 통상임금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판결한 바 있다. 다만, 정기 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기로 한 노사 합의가 있고 추가 지급으로 기업에 심대한 타격을 줄 수 있는 경우에는 신의칙 위반으로 허용되지 않는다고 했다. 따라서 대법원이 제시한 이 기준에 따라 정기 상여금의 고정성 여부 등을 판단하면 금방 시비가 가려진다. 문제는 신의칙 적용을 둘러싸고 노사의 주장이 극명하게 대립하고 있다는 데 있다. 물론 법원이 양측의 주장을 엄격하고 공정하게 판단하면 된다. 하지만 지금까지 신의칙 관련 하급심을 보면 같은 사안을 두고 1, 2심이 서로 다른 선고를 하는 등 일관성 있는 판단이 내려지는 것 같지 않다.

여기서 한 가지 의구심이 든다. 법원이 과연 기업 경영 및 재무 구조에 대한 정확한 진단을 할 수 있을지, 또한 그렇게 하는 게 바람직한지 여부이다. 사법부의 잠재 능력을 과소평가할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이에 대해서는 선례에 비춰 부정적이다. 수년 전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사건만 보더라도 사법부의 판단 미스가 얼마나 큰 리스크를 동반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독일이나 일본처럼 사법부가 기업 경영에 대한 판단을 터부시하는 나라도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언제까지 이런 문제를 가늠하기 어려운 사법부 판단에 의존할 것인지 답답하다.

노사 간의 문제는 스스로 해결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그것이 노사가 단체교섭을 하고 단체협약을 체결하는 의미이기도 하다. 물론 강행 법규나 사회 상규에 반하는 협약이나 관행은 과감하게 바꿔야 하겠지만, 적어도 공신력 있는 주무 관청의 행정지침에 따라 성실하게 이뤄진 것이라면 당연히 존중돼야 할 것이다. 최근 들어 전기차·자율주행차 등 첨단 차종 개발에 투자가 집중되면서 세계 자동차시장은 새롭게 재편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자동차 업계의 연구·개발 투자비를 보면, 독일이나 일본의 5분의 1수준에 불과하다. 게다가 수출 부진과 내수 침체로 매출이 급감한 데다 노조 파업까지 예고하고 있다. 이처럼 엄중한 상황에 언제까지 통상임금을 두고 도박을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