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개항기에 주로 중국인을 상대로 문을 연 인천의 화교 중화요리점인 공화춘의 옛 전경. 중화요리점이 조선인과 일본인을 상대하며 전국적으로 대중화된 것은 1920년대로, 이제 100년이 돼 간다. 자료사진

- 인천대 중국학술원 이정희교수 ‘중화요리점 연구’ 학술지 발표

1880년대 서울에 처음 생겨 다양한 가격에 하층민도 즐겨
당시 최고 인기는 우동·호떡… 호떡집 강도표적 될만큼 호황

가장 오래되고 많이 찾는 외식인 ‘중화요리’가 국내에서 대중화된 시기는 1920년대로, 소위 ‘중국집’의 인기가 거의 한 세기가 됐다는 연구가 나왔다. 또 그 초기에는 자장면보다 우동과 호떡이 대표 음식이었다. 인천대 중국학술원 이정희 교수는 한국사회사학회의 학술지 ‘사회와 역사’ 최근호에 발표한 ‘조선 화교의 중화요리점 연구’에서 1880∼1920년대 중화요리점의 역사와 실태에 대해 각종 자료를 토대로 이같이 밝혔다. 기존에는 이 시기의 화교 중화요리점은 주로 국내 거주 중국인을 대상으로 했으며 대중화 시기는 해방 이후, 아주 늦게는 한국인 경영 및 주방장이 보편화한 1970년대 정도로 알려졌었다. 이 교수는 26일 문화일보와의 통화에서 “가장 한국인이 많이 찾는 중화요리에 관한 역사적 연구가 의외로 적다”며 “조선총독부와 대만 소장 당대 자료를 통해 처음 실증적으로 분석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에 따르면 화교 중화요리점은 1880년대 이미 서울에서 탄생했고 일제강점기 이전 개항기에 중국인을 대상으로 한 소규모 중화요리점과 호떡집이 생겨났지만 1910년대와 1920년대 조선의 대일 쌀 수출로 소득이 늘어난 조선인과 통치자인 일본인의 중화요리에 대한 수요가 증가했다. 또 조선인의 입맛에 맞을 뿐 아니라 하층민에서 상층민까지 만족할 수 있는 다양한 가격대의 중화요리가 생겨나면서 대중화에 성공할 수 있었다.

이미지 크게보기 1925년 조선공산당 창당대회가 비밀리에 열린 서울의 중화요리점 ‘아서원’. 일제강점기의 중요한 역사적 모임은 대개 중화요리점에서 열렸다.

조선총독부가 1930년 10월 실시한 국세조사 자료를 보면 전국의 화교 중화요리·음식점은 1635개소, 호떡집은 1139개소로 총 2774개소에 달했다. 중화요리점은 지역별로 서울·인천을 포함한 경기도가 534개소로 전체의 19%를 차지했지만 거주 화교인구 비율과 관계없이 전국 농촌의 군 지역까지 분포해 중국인 대상이 아니라 국내에서 대중화했음을 보여준다. 같은 시기 일본의 중화요리·음식점이 1388개로 조선의 2분의 1 수준이었던 것과 대비된다. 1919년 4월 서울 서린동의 ‘봉춘관’에서 임시정부 수립을 위한 13도 대표가 모인 것처럼 중화요리점은 독립운동가나 문인들의 출판기념회 장소로 널리 이용됐다.

대만중앙연구원이 소장한 1922년 ‘서울 중화요리음식조합 회원록’을 보면 당시 중화요리점 숫자는 119개였고 규모도 크게 성장했음을 보여준다. 동업조합을 결성해 친목뿐 아니라 과당경쟁 방지 등을 도모했다는 것은 그 성장을 말해준다. 중화요리점은 대개 몇 명의 자본가와 노동력 제공자가 합자해 창업하는 ‘전문경영’ 체제로 더 성공률을 높일 수 있었다.

초기 대중화 시기에 가장 인기 있는 메뉴는 우동과 호떡이었다. 1930년 9월 대공황으로 당시 대구부(府)가 각 요리의 가격을 인하하는 조치를 단행했는데 그때 대표적인 중화요리로 우동을 거론한 것이 이를 말해준다. 원래 우동은 일본 음식으로, 당시 중화요리점에서 판매한 우동은 ‘호면(胡麵)’ 혹은 ‘청국우동’으로 불렸다. 이 교수는 “화교 진평순(陳平順)이 일본 나가사키(長崎)에 개업한 중국요리점에서 1900년대 초 ‘나가사키 짬뽕’을 개발했는데 이 음식이 처음에는 중국을 뜻했던 ‘지나(支那)우동’으로 불렸던 것으로 미뤄 ‘청국우동’은 이 같은 ‘백짬뽕’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자장면은 1936년 국내 신문에 처음 등장하지만 대중화된 것은 더 나중으로 볼 수 있다. 1930년 신문자료로 보면 우동(30전) 이외에도 얀잡피(양장피·80전), 탕수육(糖酢肉·55전), 잡채(40전) 등이 등장한다. 호떡은 5전이라는 싼 가격 덕분에 주로 조선인 노동자들이 이용했다. 화교 호떡집은 조선인 강도의 표적이 될 만큼 호황을 누렸다.

이 교수는 “국내 화교들은 유일한 생업수단이던 중화요리 기술을 자기들끼리 전수하다가 1970년대 화교들이 대거 한국을 떠나며 한국 사람을 고용하기 시작했고 기술을 배운 한국인들이 중국집을 내고 국민소득이 올라가면서 지금처럼 가장 흔한 외식이 됐다”며 “한국 근·현대사의 한 부분인 중화요리점 연구를 1930년대 이후 현재까지 확장해 연구를 이어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엄주엽 선임기자 ejyeob@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