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부패 근절은 모든 정권이 내건 목표였지만 방법과 수순에 따라 결과는 다르게 나타났다. 정권이 바뀌면 지난 정권에서 부당한 피해를 보았다는 측의 신고나 투서가 폭증해 이른바 ‘사정(司正) 정국’이 조성되기 쉽다. 그러나 정권 초기 정치권력이 주도하는 사정은 일시적 효과는 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흐지부지되고, 5년 뒤엔 사정 대상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았다. 정치적 반대 세력엔 가혹하고, 권력 측에 대해선 덮어주는 식이 되기 쉽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17일 노무현 정부 때 가동됐던 ‘반(反)부패 관계기관협의회’ 복원을 지시했다. 대통령이 의장을 맡고 법무·국방장관, 감사원장, 국가정보원장, 검찰총장, 경찰청장, 공정거래위원장 등이 참여하는 회의체다. 그러나 청와대가 사정기관에 직접 지시를 내리는 형태가 되면 여러 부작용을 낳게 된다. 우선, ‘사정의 정치화’를 자초할 우려가 크다. 직전 정부의 비리가 최우선 대상이 되는 것은 이상하지 않지만, 권력 의중이 개입되면 오도될 수 있다. 둘째, 사정 기관의 독립성을 저해하게 된다. 그런데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18일 벌써 감사원 등 9개 기관의 실무 책임자들을 불러 ‘방산비리 유관기관협의회’를 열었다. 셋째, 실제 사정기관 내부나 현 정권 비리는 간과할 수 있다.

박근혜 정부의 ‘하명(下命) 수사’들에 대해 최근 줄줄이 무죄 판결이 내려졌다. 문 대통령은 그런 적폐 청산을 약속했고, 조국 민정수석도 취임 일성으로 “민정수석이 수사 지휘를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부패는 한순간에 없어지지 않는 만큼 청와대는 제도 개선과 장기적인 반부패 비전에 집중하고, 구체적 사안은 해당 기관에 일임하는 게 정도(正道)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