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5060대 싱글 남녀들이 지난 21일 인천 남동구 간석동 ‘싱글 만남의 광장’에서 ‘미팅’을 하며 인사를 나누고 있다. 김동훈 기자 dhk@

중년싱글 만남의 광장

“이렇게 좋은 분이 왜 혼자이신지 모르겠습니다.” “셔츠가 아주 멋지시네요.” 지난 21일 오후 7시쯤 인천 남동구 간석동 ‘싱글 만남의 광장’. 평일 저녁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싱글 남녀’ 단체미팅에 참석한 20여 명의 5060대 회원들로 북적였다. 젤을 발라 빗어 넘긴 머리에 꽃무늬 셔츠 차림 등으로 멋을 낸 남성들은 마음에 드는 여성이 앉아 있는 테이블에 가 저마다 인사를 건넸다. 한껏 머리 볼륨을 살린 여성들은 수줍은 듯 얼굴을 붉히며 맞은편에 앉은 남성들을 곁눈질로 쳐다봤다.

이날 모임에 참석한 A(58) 씨는 “15년 전 합의이혼을 하고 혼자가 됐는데, 한 번 실패한 만큼 좀 더 신중하게 좋은 분을 만나고 싶다”며 “일대일로 소개받는 것보다 단체로 만나는 게 덜 부담스럽고 서먹함도 적어 찾게 됐다”고 말했다. 수줍어 하던 이들은 배경음악으로 흘러나온 나훈아의 트로트 곡을 소재로 자연스레 대화를 시작했다. 남성 회비 3만 원, 여성 회비 1만 원. 9가지 반찬이 나오는 뷔페식 식사에 술, 노래 공연까지 포함된 금액이다. ‘달타령’부터 노사연의 ‘바램’까지, 5060 싱글들은 함께 공연을 즐기며 점차 서로에게 마음을 열었다. 5060다운 대화 주제도 눈에 띄었다. “염색을 할 때는 살에 로션을 바르고 하면 덜 물든대요”와 같은 생활의 ‘팁’을 전해 주기도 하고, “20년 같이 살아도 결국 헤어지면 남이더라”며 서로의 아픔을 공유하기도 했다.

‘황혼이혼’의 시대.

화려한 싱글로 돌아온 5060에게 새로운 짝을 찾아주는 ‘단체미팅’ 프로그램이 인기다. 재·결혼정보회사를 찾기는 부담스럽고 다시 인생의 동반자를 찾고자 하는 5060이 몰리고 있는 것. 1만~3만 원의 회비를 낸 후 식사와 티타임을 갖고, 노래방 등으로 이동하는 코스가 일반적이다. 백한수(60) 싱글 만남의 광장 대표는 20여 년의 ‘싱글 라이프’ 경험을 바탕으로 올해 1월 이 모임을 만들었다. 이혼 후 혼자 힘으로 두 딸을 키워낸 백 대표는 “혼자됐다는 외로움에 다년간 정신과 병원도 다니고 우울증약도 먹었다”며 “기대수명이 길어진 이 시대에 사람은 혼자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백 대표는 “결혼정보회사처럼 정형화된 시스템이 아닌, 서로 충분히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싱글들만의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고 모임을 만든 이유를 설명했다.

싱글 만남의 광장은 한 달에 한 커플이 재혼할 정도로 커플 성사율이 높다. 1주일에 네 번 열리는 미팅에는 적게는 20명에서부터 많으면 50명까지 참석한다. 모임에 참여하기 위해 먼 거리를 감수하는 이들도 많다. 경기 광명시에서 인천까지 왔다는 B(여·57) 씨는 “건전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상대를 만날 수 있다는 게 이 모임의 가장 큰 장점인 것 같다”고 참석 이유를 밝혔다. 이와 비슷한 모임에서 좋은 사람을 만나 최근 가정을 꾸렸다는 C(62) 씨는 “나이를 먹고 어느 정도 능력이 되니 외모뿐 아니라 가치관이 맞는 사람을 찾게 되더라”며 “선불을 요구하는 결혼정보회사보다 서로에 대해 천천히 알아갈 수 있는 이런 모임이 훨씬 낫다”고 말했다.

5060 사이에서 ‘대화’를 기본으로 한 단체미팅이 유행이라면, 7080에게는 ‘콜라텍’과 같은 ‘즉석만남’이 인기다. 서울 종로구의 한 콜라텍. 평일 오후 3시, 한낮임에도 불구하고 반짝이는 구두를 신은 여성들과 행커치프, 백바지로 멋을 낸 남성들로 북적였다. 이곳에는 평일 약 500명, 주말에는 1000여 명이 몰린다. 주머니가 가벼운 7080 사정에 맞춰 입장료 1000원, 짐 보관료는 500원으로 매우 저렴하다. 콜라텍 내부에 있는 식당 가격도 5000~1만2000원 수준이다. 메뉴는 오리 떡갈비나 메밀전병 등 7080 입맛을 고려했다.

가격이 저렴하고 즐길거리도 많으니 7080이 마다할 이유가 없다. 짙게 바른 자주색 립스틱과 모조 진주 귀걸이로 한껏 멋을 낸 중구 약수동에 사는 D(여·81) 씨는 “건강관리도 하고 사람도 만날 겸 콜라텍에 들른다”며 “단돈 1000원만 있으면 이 시간에 어디 갈 데도 없는 우리가 여기서 춤추고 사람 만나며 시간을 보낼 수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고 말했다. D 씨는 문화일보 취재진과 짧은 대화를 나누다 곧 83세 남자친구의 손에 붙들려 자리를 떠났다.

7080이 짝을 만나는 방식은 젊은 세대가 클럽이나 나이트클럽 등에서 즉석만남을 갖는 형식과 유사하다. ‘부킹’을 주선해 주는 웨이터가 먼저 홀을 둘러본 뒤 ‘서로 맞겠다’고 감이 오는 이들을 알아서 매칭시키는 게 첫 번째 방식. 나머지는 남성들이 마음에 드는 여성에게 다가가 슬쩍 손을 잡아끌어 무대로 데려나가며 이뤄진다.

즉석만남의 성격이 그렇듯, 이들은 장기적으로 만날 대상보다는 그날 함께 즐길 대상을 주로 찾는다. 그렇다 보니 ‘꽃뱀·제비주의보’가 내려지기도 한다. 선글라스로 멋을 낸 E(80) 씨는 “지금 내 춤에 누나들이 다 뒤로 넘어가는 거 봤냐”며 “데이트를 제안할 때 ‘갈비 뜯으러 가자’고 하면 다들 좋아한다”고 말했다. E 씨는 “솔직히 말하면 돈 많은 노인을 노리는 꽃뱀·제비들이 많다”며 “서로 외로움을 달래려고 왔다가 결국 상처만 받고 돌아가게 된다”고 어두운 단면을 전했다.

월남전 참전 상이용사 출신으로 현재 국가유공자 신분이라는 F(71) 씨는 “콜라텍은 쉽게 상대를 만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그만큼 쉽게 헤어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좋아해도 오래 만날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괜히 퇴직금만 다 날릴 수 있다”며 씁쓸해했다.

김현아·김수민 기자 kimhaha@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