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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학용 논설위원

바람은 불어오는 방향에 따라 16개의 이름이 붙는다. 기상청이 동서남북 4방위를 8방위로 나누고, 이를 또 16방위로 세분화해 풍향을 측정하기 때문이다. 바람 이름의 순우리말도 넘쳐난다. 동풍은 ‘샛바람, 강쇠바람, 아랫바람’으로 불린다. ‘하늬바람, 갈바람, 윗바람’은 서풍의 다른 말이다. 남풍은 ‘마파람, 앞바람’, 강하고 찬 북풍은 ‘된바람, 뒷바람’이다. 남동풍은 ‘된마파람’, 북서풍은 ‘된하늬바람’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세인들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바람은 남동풍이다. 좋은 바람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삼국지 적벽대전에 나온다. 서기 208년 겨울, 유비와 손권이 이끄는 10만 연합군은 조조의 80만 대군과 양쯔강 남안의 적벽에서 만난다. 수적으로 달리는 연합군의 책사 제갈량은 장수 주유에게 “동짓날부터 3일간 남동풍을 빌려오겠다”며 그때까지 기다리자고 한다. 남동풍을 이용해 조조의 대군을 화공(火攻)으로 물리치려는 복안이다. 바로 그날 제갈량 예언대로 남동풍이 불었고, 조조의 대군은 불화살에 궤멸하고 만다.

그 남동풍이 이번엔 우리를 지긋지긋하게 괴롭히는 미세먼지 해결사로 등장했다. 사연인즉 이렇다. 봄철 중국발 미세먼지를 한반도로 나르는 건 서쪽에서 동쪽으로 부는 편서풍과 이동성 고기압의 영향으로 형성되는 북서풍이다. 하지만 5∼6월부터는 북동쪽에 있는 오호츠크해 고기압이 발달하면서 한반도에 남동풍이 불기 시작한다. ‘청정’ 바다에서 불어오는 이 바람이 ‘나쁜’ 바람의 유입까지 막아내면서 우리에게 맑고 푸른 하늘을 선물한다. 통계로도 입증된다. 6월 이후 서울의 미세먼지 농도는 ‘좋음’(30㎍／㎥ 미만)이나 ‘보통’(30∼80㎍／㎥) 수준이다. 올 들어 5월 말까지 ‘좋음’인 날이 단 6일(전체의 4%)뿐이었던 점에 비춰볼 때 놀라울 정도로 개선된 수치다.

이러다 보니 한참 미세먼지의 주범으로 몰렸던 경유차 운전자들의 불만이 쏟아져 나온다. 지인인 한 대학교수는 “국가가 친(親)환경차라고 하길래 수년 전 애국하는 마음으로 경유차를 구입했는데, 이제 와서 과학적 근거도 없이 반(反)환경차로 낙인찍어 경유세 인상 운운하니 울화가 치민다”고 말했다. 경유차와 미세먼지 간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다는 국내외 연구 결과도 계속 나온다. 경유차의 누명이 벗겨질 날도 머지않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