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남성일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가 23일 서울 서대문구 백범로 서강대 연구실에서 새 정부의 일자리 및 노동 정책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있다. 신창섭 기자 bluesky@

■ ‘노동경제학 권위’ 남성일 서강대 교수

“일자리 문제는 경제와 동떨어져 생각할 수 없습니다. 양질의 일자리는 양질의 제품과 서비스를 만드는 과정에서 파생돼 나오는 것이지, 이를 뒤집어서 양질의 일자리를 만든다고 양질의 서비스와 상품이 나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죠.” 남성일(63)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는 국내 노동경제학 분야의 대표적인 학자다. 시장주의 노동경제학을 전공한 그는 학자 특유의 은유적인 표현이나 눈치를 살피는 대신 단호하고 확신에 찬 어조로 자신의 주장을 펼치기로 정평이 나 있다. 상아탑에만 머무는 일부 학자들과 달리 국민경제자문회의 위원, 실업대책위원회 자문위원 등으로 과거 정부에서 일자리 및 노동 관련 정책 입안 과정에 참여해 시장경제에 입각한 의견을 적극 개진하기도 했다. 23일 서울 서대문구 백범로 서강대 연구실에서 만난 남 교수는 한 시간 넘게 이뤄진 인터뷰 내내 새 정부의 일자리 및 노동 정책에 대한 깊은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새 정부가 일자리 정책을 최대 핵심 과제로 삼고 있는데.

“일자리 문제와 경제 문제는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일자리에만 초점을 맞춰서는 오히려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본다. 물론 국민이 피부로 느끼기에는 일자리 문제가 심각한 측면이 있지만 차라리 일자리위원회보다 경제환경위원회라든지 기업 및 경제환경 전반을 논의하는 기구를 만들어 그 하나의 분야로 일자리를 얘기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이다. 경제학적 관점에서 일자리는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과정에서 파생되는 수요이지, 본령이 아니기 때문이다.”

―소득 중심 성장을 내건 J노믹스(문재인 정부 경제정책)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경기가 부진할 때 유효 수요를 만들어 경제를 선순환 구조로 이끈다는 것은 새로운 아이디어는 아니다. 문제는 그런 접근 방식이 현시점에서 시의적절하느냐의 문제인데 동의하기 어렵다. 현재 우리 경제의 문제가 단순히 일자리가 없고 소득이 없어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인구 감소로 소비 기반이 줄어들고 대기업의 해외 수출을 통한 낙수 효과가 과거처럼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이 핵심 문제다. 근본 문제를 놔두고 일자리를 확대해 소비를 늘리겠다는 것은 보기에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우리 경제의 곪은 부분을 제대로 들여다봐야 한다는 측면에서는 단견이다.”

―청년 취업난이 비상 상황이기 때문에 공공 부문 일자리 확대가 필요하다고 하는데….

“지금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못 잡는지, 안 잡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3년째 대학생을 대상으로 희망임금 조사를 하는데 수도권 대학 학생들의 희망임금이 4500만 원이다. 이걸 충족하는 일자리는 많아야 1만 개가 될까 모르겠다. 그렇다고 이 학생들을 탓할 수도 없는 게 이런 일자리와 중소기업 일자리의 임금 격차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지난해 방한한 일본 학자에게 일본 소니나 토요타의 대졸 초임을 물어보니 300만 엔(약 3022만 원) 정도라고 하는데 일본이 취업률이 높은 이유는 중소기업 임금이 대기업의 85∼90%에 달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한쪽은 4500만 원, 다른 한쪽은 3000만 원 미만인데 이런 불균형을 놔두고 공공부문 일자리를 늘린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공기업이나 공공기관들이 일자리를 확대할 능력이 되는지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습니다만.

“투자기관 경영평가를 해봤는데 공기업들이 정부가 인력을 뽑으라고 하면 막 뽑는다. 그런데 다음 정부가 들어서 효율화를 하라고 하면 기존 직원들을 자를 수는 없다 보니 한동안 신규 인력을 안 뽑는다. 이런 식으로 하다 보면 인사시스템이 엉망이 돼버린다. 지금 공기업 중에 그렇게 돌아가는 곳이 많다. 가장 걱정되는 문제는 공공 부문 일자리 확대에 대한 비판이 일 경우 사회적기업을 확대한다는 수순으로 가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정부 발주 물량의 일부를 이들에게 몰아주게 되고 그 과정에서 민간 부문이 죽어 나간다.”

―장기적으로 민간 부문에서 일자리를 확대해야 하는데 어떤 방법이 있나.

“모든 일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는데 일자리 문제가 심각해진 것은 기업하는 환경이 나빠져서다. 기업이건 사람이건 자유롭게 움직일 때 기회가 생긴다. 기업과 사람이 자유롭게 움직이도록 두고 걸림돌이 되는 부분은 제거해줘야 한다. 돌아다니고 움직이다 보면 기회가 생기고 일자리가 늘어난다. 또 하나는 이렇게 하면 외국기업들이 들어온다. 지금 우리 기업들은 밖으로 나가는데 외국기업들은 안 들어온다. 노동 환경과 입법 환경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해줘야 하는데 다른 데로 계속 눈을 돌리니까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육성을 통해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은데….

“과거 20세기에는 정규직이 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았지만 최근에는 전 세계적으로 정규직 수요가 줄어들고 있다. 단순반복적인 일은 모두 기계가 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4차 산업혁명으로 일자리가 줄어들지, 늘어날지는 학자들 사이에 논란이 있다. 공학 쪽에 있는 사람들은 기술적으로 대체 가능하기 때문에 일자리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하는데 경제학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일자리가 없어지지만 새로운 일자리가 생긴다. 문제는 어떤 일자리가 줄고 늘어날지를 면밀히 검토해 여기에 맞춰 시스템을 가져가야 한다는 점이다. 지금처럼 가만히 앉아서 비정규직을 없애고 전부 정규직으로 하겠다는 식으로 접근하면 일자리가 늘어날 수 없다.”

―정부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0) 정책을 내걸었는데….

“노무현 정부 때도 그랬고 지금 정부도 그렇고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서는 큰소리칠 입장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노무현 정부 당시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 등을 만들어 오히려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고용 불안을 초래한 책임부터 져야 한다. 2004년인가 2005년 청와대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주재로 열린 회의에서 비정규직 확산은 국제적 추세이기 때문에 없앤다는 것은 바람직한 방향이 아니고 동일 노동에 불합리한 차별이 있으면 해소하는 방향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는데 다 무시했다. 결과적으로 비정규직은 오히려 늘어나고 계약직 고용불안은 더 커졌다. 문재인 대통령도 당시 수석비서관으로 회의에 참석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차별 해소는 어떻게 가능한가.

“바깥이 추운 게 아니라 방 안이 너무 더운 게 문제다. 비정규직이 적게 받는 게 아니라 정규직이 많이 받는 게 문제다. 그 기준은 다름 아닌 생산성이다. 지금 정규직은 노동조합의 보호를 받아 임금에 거품이 끼어 있는데 비정규직은 거품이 없다. 일자리의 기본은 생산성과 일자리의 등가성인데 그 원칙이 깨진 상태다. 생산성이 낮은데 임금이 높거나 임금이 높은 만큼 생산성이 못 따라가는 것이다. 생산성이 올라갈 때까지 대기업 임금을 동결하는 식으로 거품을 없애면 정규직과 비정규직 임금 격차도 축소될 것이다.”

―3년 내 최저임금 1만 원 인상 문제를 두고 논란이 있는데.

“최저임금제의 부작용에 대한 연구 결과는 많이 나와 있다. 최저임금은 해당 근로자만의 문제가 아니고 그 위의 근로자 임금까지 연쇄적으로 올라간다. 기업 입장에서는 이로 인해 고용을 더 줄일 수밖에 없다. 가장 답답한 게 일자리를 늘리겠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일자리를 줄이는 방향으로 정책을 쓴다. 나는 극단적으로 최저임금을 1만 원으로 올리면서도 일자리를 그대로 보전하는 게 가능하다면 차라리 1만5000원으로 올리는 게 낫다고 말한다.”

―근로시간 축소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봐야 하나.

“누구를 위해 근로시간을 줄이자는 것인지 모르겠다. 말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실효성이 없다. 우리나라의 근로시간이 외국에 비해 많은 것은 파트타임이 적어서 근로시간이 길게 잡히는 것이다. 또 우리 근로 관행과 시간 외 수당 제도의 부조리함이 원인이다. 공무원들 보면 꼭 저녁을 먹고 다시 사무실로 들어와 시간외 수당을 타 먹는데 이런 식으로 불필요하게 근로시간을 늘리는 게 많다. 이런 부분을 줄여야 한다. 프랑스가 근로시간을 줄였다가 다시 늘렸다. 무엇보다 근로시간을 단축하면 10인 미만 사업장이 큰 위험에 처하게 된다.”

―산업 현장에서는 노동조합들이 새 정부의 노동친화적 정책을 기대하고 요구사항이 늘고 있는데….

“노조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주장하는 것을 갖고 부도덕하다 비난하기는 어렵다. 이런 부분은 공정거래의 관점에서 정부가 처리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대체근로를 허용하지 않아 파업이 발생해도 사용자의 대항 수단이 없다. 글로벌 수준에 맞춰 사용자의 대항 수단을 만들어줘야 정상화된다. 하지만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 방향을 봐서는 그럴 가능성이 없어 걱정된다. 앞으로 5년 뒤 일자리는 더 안 늘고, 국민 부담은 더 커지고, 청년들의 눈높이는 더 높아지고, 노조는 자신들의 요구를 끝없이 주장할 것 같다.”

―최근 문재인 정부의 경제사령탑이 인선됐는데 당부할 말이 있다면.

“경제 문제는 정치 등 다른 문제와 달라 철저하게 과학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우리가 해결해야 할 문제는 훨씬 어렵고 고차원적이다. 기술 발전의 도도한 흐름을 명확히 보고 적응해야 한다. 기술 발전에 적응하지 못하는 기업은 죽고 적응하지 못하는 정부도 언젠가 고꾸라질 것이다. 또 하나 덧붙이자면 공공 부문의 지나친 확장을 경계해야 한다. 이 비효율만 걸러내도 상당한 정도의 예산을 필요한 곳에 쓸 수 있을 것이다.”

김남석·최재규 기자 namdol@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