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박근혜 전 대통령이 수의가 아닌 남색 사복을 입고 수갑을 찬 채 23일 오전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뇌물 사건 첫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서울구치소에서 타고 온 호송차에서 내려 이동하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박 전 대통령이 플라스틱 집게핀으로 고정해 올림머리를 한 모습. 곽성호 기자 tray92@

- 수감 53일만에 정식 재판

朴, 수갑찬 채 법원으로 호송
재판부 질문엔 담담하게 답변

崔는 朴 눈 피하며 법정 입장
“朴 뇌물 안받아… 내가 죄인”

변호인 사이두고 나란히 앉아
“국민참여재판은 안하겠다”

재판장, 朴 ‘피고인’으로 지칭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도 출석

박근혜(65) 전 대통령이 23일 오전 10시 ‘40년 지기’인 최순실(61) 씨와 나란히 법정에 섰다. 삼성 등 대기업에서 총 592억 원의 뇌물을 받거나 요구·약속한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 된 이후 첫 정식 재판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 김세윤) 심리로 열린 이날 공판은 피고인들에 대한 신원을 확인하는 인정신문부터 검찰 측의 공소요지 설명, 혐의에 대한 피고인들의 의견제출, 증거채택에 대한 피고인들의 동의 여부, 향후 공판계획 정리 등으로 진행됐다.

서관 417호 형사대법정. 재판장이 시작을 알리자 박 전 대통령이 여성 방호원의 부축을 받으며 초췌한 얼굴에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들어섰다. 박 전 대통령은 플라스틱 집게핀으로 약식 올림머리를 했다. 박 전 대통령이 자리에 앉은 뒤 곧장 최 씨가 법정에 들어섰으나 두 사람은 서로 인사도 주고받지 않았다. 최 씨도 피고인석에 앉아 있는 박 전 대통령의 눈빛을 피하려는 듯 정면을 보며 법정으로 들어왔다. 줄곧 앞만 응시하던 박 전 대통령은 변호인인 유영하 변호사와 짧게 귓속말로 대화할 뿐 최 씨에게 눈길도 주지 않았다. 박 전 대통령은 신원을 묻는 재판부의 질문에 일어서 낮지만 또박또박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피고인석에 앉아 있을 때는 무표정하게 정면을 응시했다. 인정신문에서 최 씨는 울먹이는 표정을 짓고 코를 훌쩍였으나 박 전 대통령은 내내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았다. 최 씨는 “재판정에 박 전 대통령을 나오시게 한 제가 죄인”이라며 “박 전 대통령은 절대 뇌물을 요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날 재판에는 신동빈(62) 롯데그룹 회장도 피고인석에 자리했다. 재판장은 박 전 대통령을 ‘피고인’이라고 지칭했고 검사는 ‘피고인’으로 부르면서 간간이 ‘전직 대통령’이라는 표현도 썼다.

인정신문이 끝난 후 검찰의 공소요지 설명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공판이 시작됐다. 공소유지를 맡은 이원석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은 “대통령을 포함해 우리는 헌법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은 권한을 남용하고 국민 주권주의 및 법치주의를 심각하게 훼손했다”고 말했다. 이어 한웅재 형사8부장은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뇌물 등 18개 혐의를 설명했다. 검찰이 공소사실을 읽는 동안에도 박 전 대통령은 동요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18개 범죄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만큼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재판은 매주 3∼4회 집중적으로 열릴 예정이다. 앞서 2차례 공판준비에서 최 씨 재판과의 병합심리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던 박 전 대통령 측은 이날 첫 공판에서도 혐의를 전면 부인하는 등 향후 본격적인 법리 공방을 예고했다.

이날 유 변호사는 “지금 돈 봉투 만찬 사건으로 법무부와 대검찰청이 감찰을 하고 있는데, 만약 이 사건의 논리를 검찰에 적용하면 사건 당사자들에 대해 ‘부정처사 후 수뢰죄’로 얼마든지 기소 가능하다는 게 본 변호인의 의견”이라고 말했다.

한편 헌정 사상 첫 대통령 탄핵과 그로 인한 재판인 만큼 공판이 시작되기 전부터 법원 안팎에선 박 전 대통령 지지자들의 돌발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경찰이 배치되는 등 긴장감이 흘렀다. 일반적으로 피고인들은 대형 호송 차량으로 함께 이송되지만 박 전 대통령의 경우 안전 문제 등을 이유로 별도의 호송차에 타고 재판 시작 50여 분 전에 법원에 도착했다.

정철순 기자 csjeong1101@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