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지난 12일 홍콩 섬 아시아소사이어티에서 열린 공연 연출가 네트워크 포럼(PNMF).

중국발 한한령(限韓令·한류금지령)이 누그러지는 분위기입니다. 한한령은 드라마와 영화 등 대중문화에서 시작돼 클래식 음악과 무용까지, 예술계 전반으로 퍼져 나가 큰 우려를 낳았습니다. 엔터테인먼트업계의 경제적인 손실이 가장 문제였지만, 소프라노 조수미와 피아니스트 백건우, 그리고 발레리나 김지영 등 순수 예술 아티스트의 공연까지 취소되면서 정서적인 충격도 컸습니다.

가장 먼저 기지개를 켜고 있는 분야는 뮤지컬입니다. 창작뮤지컬 ‘빨래’. 서민들의 소박하고 꿋꿋한 일상을 그린 대학로 스테디셀러인데요. 일찌감치 중국 진출에 성공해 수차례 공연도 했지만 한한령 여파로 작년 가을 예정된 무대들이 줄줄이 취소됐었죠. ‘빨래’의 라이선스 공연이 다음 달 23일부터 7월 9일까지 중국 베이징(北京) 다윈극장에서 진행된다고 합니다. 이어지는 공연들도 한한령 완화의 기대감을 키웁니다. 뮤지컬 ‘마이 버킷 리스트’가 오는 8월 상하이(上海)와 베이징에서, ‘빈센트 반 고흐’도 9∼10월 중 상하이에서 선보일 예정입니다. 여기에, 중국 음원 차트에서 사라졌던 K-팝 순위도 부활했다고 합니다.

위축됐던 공연계가 다시 활기를 찾는 건 반가운 소식인데요. 최근 둘러본 홍콩에서는 정작 한한령보다 1990년대 말 시작된 시주룽(西九龍)문화지구(WKCD) 개발이 막바지를 향해가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함을 느꼈습니다. 중국이 영국으로부터 홍콩을 반환받은 후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약 300억 홍콩달러(4조3000억 원)를 들여 주룽(九龍)반도 서쪽 지구에 공연장과 전시장 17개를 짓는 대규모 국책사업인데요. 세계 3위 규모의 미술 시장을 보유한 홍콩이 아시아 공연시장도 주도하겠다는 의도입니다.

WKCD는 올해 말 베이징 오페라(경극) 전용 극장인 ‘시추 센터’ 문을 엽니다. 한때는 여러 사회적 찬반 논쟁을 불러일으켰으나 지금은 문화 발신지로서의 준비를 착실히 하고 있습니다. 공연 연출가 네트워크 프로그램, 상주 예술가 협업 등으로 일본, 호주, 대만 등과 교류를 다지고 있으며, 다양한 버전의 경극을 계속해서 테스트하며 관객을 파악하고 있습니다. 실험적이고 아방가르드한 경극부터, 전통에 충실한 클래식 경극까지 현지인, 아시아인, 그리고 서양 관광객들까지 다양한 문화권과 취향에 맞춘 경극을 계속해서 선보이고 있다는 점이 놀라웠습니다. 게다가, 젊은 관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인터넷을 통한 라이브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까지 실시하고 있었는데요. 이는 최근 한국 공연계에서도 시도하고 있는 바이지요.

한한령 풀린다고 마냥 마음을 놓을 일이 아닙니다. 경극 공연장 이후엔 무용 센터, 그리고 뮤지컬 센터가 차례로 문을 엽니다.

pdm@munhwa.com

이미지 크게보기 지난 12일 홍콩 리릭극장에 마련된 가설 티하우스에서는 오극(홍콩 오페라) 공연이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