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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각수 前 주일본 대사, 법무법인 세종 고문

취임 엿새째를 맞은 문재인 대통령이 한·일의원연맹 회장을 지낸 문희상 의원을 일본 특사로 파견한다. 지금 한·일 관계에는 난제(難題)들이 쌓여 있다. 악화일로인 한·일 관계는 세대교체, 일본 사회의 보수 우경화, 한·일 국력 격차 축소, 양국 리더십 문제 등 다양한 요인이 얽히면서 상호 경원 현상마저 보이고 있다. 최대 현안인 일본군위안부 문제도 2015년 12월 26일 합의를 통해 해결을 꾀했으나, 한국은 일본의 진정성이 결여된 사죄, 일본은 주한 공관 앞 소녀상 이전 문제로 상호 불신의 골이 깊고 대립각이 크다.

지난 11일 문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합의가 국제사회에서도 높이 평가되고 있으며 책임을 가지고 실시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이행을 강조했다. 이에 문 대통령은 “우리 국민 대다수가 정서적으로 합의를 수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고 민간의 영역에서 일어나는 문제에 대해 정부가 나서서 해결하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시간이 필요하다”면서 양측의 공동 노력을 주문했다. 재교섭을 직접 언급하지 않고 정부가 아닌 국민의 인식이라는 우회적 표현을 사용해 직접적 대립은 피했다.

새 정부는 대일 관계와 관련, 과거사는 원칙을 가지고 대응하되 협력이 필요한 사안은 협력한다는 이원적 접근(dual-track approach)을 시사하고 있다. 북한 비핵화에 같은 입장인 양국은 미국에서 거론되는 핵(核) 동결에 그치는 해결을 막는 데 힘을 합할 수 있다. 동아시아 내 자유주의 국제질서 유지와 지역 협력 체제 구축에도 협력의 잠재력이 크다. 경제적으로 4차 산업혁명, 에너지 환경, 실버산업, 한국 인력의 일본 진출, 인프라·플랜트·자원 개발에서 제3국 공동 진출 등 상생의 협력을 모색할 수 있다. 외교적으로도 다양한 지역·글로벌 이슈에서 협력을 통한 시너지 효과를 거둘 수 있으며, 안보적으로는 미국의 주요 동맹국으로서 고도화한 북한 위협 대처에 협력이 필요하다. 이처럼 과거사 문제를 착실히 해결하면서 협력의 분모를 넓혀 가는 구동화이(求同化異)의 자세가 중요하다.

위안부 합의 문제는 파기·재협상의 제로베이스보다는 합의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방식이 현실적이다. 위안부 문제는 ‘마음, 기억 그리고 인권’의 문제다. 합의는 피해자의 마음을 치유하는 데 크게 부족했다. ‘사사에(佐佐江) 제안’처럼 일본 총리 명의 사죄 서한과 주한대사의 직접 전달이 필요하며, 국내적으로도 피해자와 소통하면서 그분들 마음을 어루만지는 조치를 해야 한다. 기억 차원에서는 역사적 진실 규명과 교육은 합의와 무관한 점을 분명히 하고, 이스라엘의 야드바셈과 같은 ‘기억의 전당’을 세워 20세기 전반 역사를 기록하고 희생자들을 기억하는 작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인권 차원에서는 위안부 문제가 전시 여성 인권의 제도적 유린이었던 만큼 현재진행형인 유엔 차원의 전시 여성 인권 보호 활동에 적극 참여할 필요가 있다.

한·일 역사 화해의 길은 아직도 멀고 험하다. 가해자는 반성·사죄하고 피해자는 관용하면서 진지하게 풀어가는 가운데 미래 열기를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큰 틀에서 한일역사공동위원회를 재가동하고, 새로운 한·일 관계의 미래 비전을 설계·실행할 1.5트랙의 대화 기제를 설치하는 것도 방안이다. 또한, 어렵더라도 소통이 중요한 만큼 셔틀 정상외교의 복원도 필요하다. 안정된 주변국 관계가 우리 외교의 출발점인 만큼 새 정부는 한·일 관계의 조기 회복을 꾀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