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는 물론 지난 10일 취임식에서도 ‘낮은 청와대’를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국민께 드리는 말씀’이라고 명명한 취임사에서 “낮은 사람, 겸손한 권력이 되어 가장 강력한 나라를 만들겠다” “낮은 자세로 일하겠다” “제왕적 권력을 최대한 나누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과거 구중궁궐 같은 청와대 내부에서 국민과 행정부를 향해 권력을 휘두르는 청와대가 아니라, 국민과 소통하면서 행정부에 대해서도 옥상옥으로 군림하지 않겠다는 의미일 것이다. ‘광화문 시대’도 그런 취지로 보인다.

그런데 11일 확정된 청와대 직제개편안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정책실장과 보좌관을 신설하고 국가안보실을 강화하는 등 전임 청와대의 문제점을 시정하려는 노력은 돋보인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3실·10수석’에서 ‘4실·8수석· 2보좌관’체제로 바뀌었다. 정원도 전임 정부의 장관급 2명, 차관급 11명을 포함해 465명에서, 장관급 3명에 차관급 12명 등 총 486명으로 늘어났다. 문 대통령이 ‘작은 청와대’를 명시적으로 약속하진 않았지만 책임총리와 내각 위주의 국정 운영을 하겠다고 공약한 만큼 청와대 역할은 보좌와 기획, 소통에 집중하는 것이 당연하다. ‘수석을 폐지하고 부처와 대통령 사이를 연락할 비서관만 남기겠다’는 유승민 후보의 공약이 눈길을 끈 것도 이런 이유다.

여기에다 문 대통령은 인수위원회를 대체할 국가기획위원회를 한시적으로 운영하는 것과 더불어 국가일자리위원회를 시작으로 4차산업혁명위원회, 성평등위원회 등 이미 10개 이상의 위원회 설치를 공약했다. 김대중 정부에서는 364개, 노무현 정부는 426개의 대통령 및 총리 산하 위원회가 남발돼 ‘위원회 공화국’이라는 말까지 나왔는데, 이것이 재연되지 않을 까 하는 우려가 많다. 역대 정권에서도 처음에는 내각 중심이라고 하지만 대통령과 장관의 만남이 뜸해지면 비서실에 힘이 실리고, 장관은 설 자리가 없어지던 일을 충분히 경험했다. 조직과 인원이 늘면 자연히 ‘제2 내각’ 된다. 이렇게 되면 집무실을 광화문으로 옮긴다 한들 의미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