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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권 정치부 부장

문재인 대통령은 10일 ‘국민께 드리는 말씀’이란 취임사에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국민에게 약속했다. 당선 확정과 동시에 임기가 시작된 문 대통령의 취임식은 이날 국회의사당 중앙홀(로텐더홀)에서 20여 분간 약식으로 치러졌다. 조촐한 취임식만큼이나 취임사 또한 3100여 자에 불과할 정도로 짧았다. 102개 문장으로 이뤄진 취임사에서 문 대통령은 ‘∼을 하겠다’ ‘∼이 되겠다’ 등의 ‘공약형’ 문장을 63개나 사용했다. 여러 가지 약속과 다짐 가운데 ‘상식대로 해야 이익을 보는 세상을 만들겠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롭게 하겠다’는 말은 ‘적폐 청산’이나 ‘국민 대통합’보다 훨씬 가슴에 와 닿았다. 홍은동 사저에서 출퇴근하는 문 대통령은 출근길에 차량에서 내려 시민들과 ‘셀카’를 찍거나 이낙연 국무총리 지명자 등을 직접 소개하는 등 격의 없는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 위해 소통하고 대화하겠다는 공약을 실천하는 것이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국민에게 약속한 ‘부정부패 없는’ ‘공정한’ ‘일자리가 마련된’ ‘골고루 잘사는’ ‘강하고 평화로운’ 대한민국은 ‘인기 있는’ 대통령만으로는 이뤄질 수 없다. 지난 4월 28일 4대 비전 아래 12대 약속을 지키기 위해 201개 세부 공약을 제시한 문 대통령이 공약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법과 제도를 개정해야 한다. 아무리 인기가 좋은 대통령이라 하더라도 법치 대신 인치를 하면 독재다.

노무현 정부 시절 국가보안법, 과거사규명법, 언론관계법, 사립학교법 등 4개 개혁법안 추진 과정을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지켜본 문 대통령은 개혁 법안 처리가 얼마나 힘든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문 대통령이 공약 1호로 제시한 이명박·박근혜 9년 집권 적폐 청산은 나라가 두 쪽 날 정도의 격한 대립과 갈등을 낳을 수 있는 화약고다. 자칫 개혁 과제 중 하나에서 발목이라도 잡힐 경우 문 대통령은 5년 내내 갈등을 겪다가 실패한 대통령으로 남을 수도 있다.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와 같은 전근대적인 ‘가산제’(家産制·patrimonialism)가 남아 있지만(反), 다른 쪽에는 현직 대통령을 파면시키는 국민의 에너지가 넘쳐나며(正) 공존하는 곳이 대한민국이다. 이런 상황에서 문 대통령이 공약을 지키기 위해 개혁 과제를 개별적으로 추진할 경우 성공보다 실패할 공산이 크다.

갈수록 심화하고 밀접하게 연결돼 있는 국가 난제들이 절차에 따라 합리적으로 해결되는 합(合)의 지대를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새로운 대한민국 만들기이자, 국가 대개조 작업이다. 이는 수명을 다한 1987년 헌법 체제를 바꾸는 개헌에서 시작해야 한다. 문 대통령도 내년 초까지 개헌안을 국회에서 처리한 뒤 2018년 6월 지방선거에서 국민투표를 실시하겠다고 약속했다. 문 대통령 앞에 놓인 ‘고르디우스의 매듭’ 같은 과제들은 하나하나 풀려고 하면 더 꼬이는 법이다. 단칼에 잘라야 한다. 권력을 손에 쥔 정권 초기인 지금, 문 대통령은 성공하는 대통령이 될 건지, 혼자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져 실패하는 대통령이 될 건지 선택의 기로에 있다. yb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