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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욱 경희대 교수 경제학, 한국제도경제학회 회장

몇몇 대선 주자가 근로시간 단축을 법제화하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있다. 명분은 우리나라의 근로시간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을 훨씬 넘는 2위이고, 장시간 노동으로 인해 근로자들의 삶의 질이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근로시간을 줄여 근로자들에게 ‘저녁이 있는 삶’을 갖게 하여 근로자들의 삶의 질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근로시간을 줄여 일자리를 창출, 실업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근로시간 단축을 법제화한다고 해서 근로자의 삶의 질이 향상되고 일자리가 창출되지는 않는다.

근로시간 단축이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라는 주장은 기업의 일이 고정돼 있다는 가정 아래서나 가능하다. 그런 가정 속에서는 주 68시간씩 3명이 할 수 있는 일을 주 52시간씩으로 줄여 4명이 하면 되므로 1명의 고용이 증가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터무니없는 생각은 기업의 비용이 증가하지 않는 경우에만 성립한다. 다시 말하면, 기존 근로자 3명의 임금을 줄여서 줄인 임금으로 추가로 고용할 1명에게 임금을 준다면 근로시간 단축으로 일자리가 창출된다는 주장은 옳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저녁이 있는 삶’을 위해 기존 근로자 3명이 임금 삭감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기존 근로자들의 임금을 삭감할 수 없다면 근로시간 단축은 기업의 비용 증가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비용 증가로 인해 기업이 사업 규모를 줄일 수도 있고 문을 닫을 수도 있다. 이것은 고용이 줄어 실업이 증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근로시간 단축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게 아니라, 일자리를 축소하는 일이다.

아마도 근로시간 단축의 법제화로 가장 피해를 보는 쪽은 중소제조업체와 그곳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일 것이다. 대다수 대기업과 공기업에서는 OECD 표준 근로시간을 지키고 있기 때문에 근로시간을 단축해도 이들에게 미치는 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중소 제조업체의 경우 현재 근로시간이 매우 길기 때문에 근로시간이 단축되면 이들이 큰 타격을 받게 될 것이다. 게다가 그러잖아도 인력 부족 문제를 겪고 있는 중소 제조업체의 경우 근로시간 단축으로 임금이 삭감되면 인력 구하기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이러한 사태를 피하기 위해 생각할 수 있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을 수 있다. 하나는 법으로 근로자의 임금 인하를 강제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정부가 기업 비용의 증가분을 보전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근로자의 임금 인하는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엄청난 저항에 부닥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기업 비용을 보전해주려고 할 것인데, 그것은 결국 납세자에게 부담을 떠넘기는 것이며 기업에 대한 정부의 간섭을 증가시키는 일이다. 그 결과는 불문가지다. 기업의 경쟁력 저하요, 경제의 쇠퇴다. 그러므로 근로시간을 단축해 근로자의 삶의 질을 높이고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구상은 허구에 불과하다.

근로자들이 원하는 것은 근로시간을 단축해 만들어지는 잠정적인 일자리가 아니고 지속 가능한 양질의 일자리다. 그런 일자리는 기업의 투자에 의해 만들어진다. 지금 그런 일자리들이 만들어지지 않고 있는 원인은 기업 환경 악화로 인해 기업의 투자가 잘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 책임은 전적으로 정치권에 있다. 그동안 국회는 경제민주화란 명분 아래 기업 활동을 옥죄는 온갖 규제 입법(立法)을 남발해 왔다. 그로 인해 기업 하려는 의지가 약해졌고 투자가 줄었다. 기업들은 규제가 적은 해외로 나가고, 해외에서 다시 국내로 돌아오려고 하는 기업들이 제3국을 선택하고 있다. 이런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단지 근로시간 단축을 통해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대선 주자들과 그들을 보좌하는 참모들의 인식은 매우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좋은 의도로 법제화한다고 해도 의도대로 되지 않는 것이 경제다. 법으로 근로시간 단축의 법제화 의도는 좋을지 모르지만, 그 결과는 정반대다. 근로자의 삶의 질이 향상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떨어지고, 일자리가 창출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줄어드는 것이다. 좋은 정책이란 의도하지 않은 효과까지 고려한 정책이다. 근로시간 단축은 좋은 정책이 될 수 없다. 좋지 않은 정책은 실행하지 않는 것이 상책(上策)이다. 그것이 국민을 이롭게 한다. 정말 일자리를 창출하고 싶으면 기업 환경을 개선하는 데 매진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