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지난 3일 경남 산청군 삼장면 지리산 밀원에서 박재춘(오른쪽) 씨와 벌이 무서워 그물망을 써야 한다는 아내 손덕순 씨가 본격적인 꿀 채취에 앞서 벌통에 벌집을 추가로 넣어주는 작업을 하며 웃고 있다.

- 산청군 홍계마을 밀원 박재춘씨

전기공사업자서 빈털터리 신세
8년전 처남 권유로 곶감 만들어

벌통 10통서 시작 300통 양봉
디자인 전공 딸 SNS로 홍보

아들도 예비귀농자 교육 받아
겨울 곶감·봄엔 꿀 많이 팔려

물건 택배차 실을 때마다 기뻐
작년매출 1억7000만원 올려

“처음 귀농했을 때는 엄청 힘들었죠. 농사를 지으며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함께 귀농한 아들·딸과 곶감을 만들고 양봉도 같이하면서 SNS로 들어온 주문을 택배 차량에 실어 보내는 하루하루가 너무 즐거워요.”

지난 3일 지리산 자락인 경남 산청군 삼장면 홍계마을 밀원에서 벌통을 돌보던 박재춘(56) 씨는 “튼실한 가족 농업경영체를 만들고 싶다”며 이같이 말했다. 박 씨는 양봉과 곶감으로 지난해 연 매출 1억7000만 원을 올린 8년차 귀농인이다. 뿔뿔이 흩어져 어렵게 사느니 비전 있는 농업에 힘을 합쳐보자며 아들·딸까지 귀농시켜 페이스북과 카카오톡 등을 통해 손수 채집한 벌꿀을 포함해 곶감, 미숫가루, 된장, 꽃차, 효소 등 가공 농산물을 판매하고 있다.

1985년 군대 제대를 하고 고향인 홍계마을을 떠나 부산으로 간 박 씨는 전기공사업체를 운영하며 잘나가던 자영업자였다. 하지만 좀 더 큰돈을 벌겠다며 동업자와 빌라 공사에 뛰어든 것이 화근이었다. 2002년 사업이 실패하면서 빈털터리가 되다시피 한 그는 이후 7∼8년간 해보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로 인생의 밑바닥을 경험해야 했다. 그러다 나이 48세 되던 2009년 고향에서 곶감을 만들어 팔면 어떻겠느냐는 처남의 권유에 부인 손덕순(53) 씨와 귀농을 결심, 큰아버지 집 아랫방에서 농촌생활을 시작했다. “농촌생활을 다시 할 수 있을지 1년만 살아보자며 들어왔는데 지리산 곶감을 시중에서 알아줘 귀농하면 먹고 살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그래서 완전 귀농을 결심하게 됐죠.”

박 씨는 이듬해 친구 땅(2800㎡)을 임차해 곶감을 깎아 말릴 수 있는 하우스를 짓고 4만2000㎡ 감나무밭도 임차해 야심차게 시작했다. 그러나 농약을 잘못 치는 바람에 감이 모두 떨어지고, 3년 전에는 이상고온으로 건조 중이던 곶감에 곰팡이가 피면서 한 해 농사를 망치는 등 실패를 거듭했다. 성공하지 못하고 돌아왔다는 자괴감에 고향 주민을 만나는 것도 꺼려져 2년간 은둔생활을 하듯 일에만 매달렸지만, 열매는 쉽게 열리지 않았다.

열심히 노력한 결과는 귀농 6년차인 2015년부터 나오기 시작했다. 2013년 벌통 10통으로 시작한 양봉이 300통으로 늘고, 곶감도 15동(15만 개)을 만들어 팔면서 7000만 원대에 머물던 매출이 1억 원대로 껑충 증가한 것. 이 같은 성장에는 부모님을 돕겠다며 2014년, 2015년 잇따라 귀농한 딸 혜림(26) 씨와 아들 승빈(28) 씨의 보탬이 컸다. 아들의 말을 듣고 힘만 들고 매출은 오르지 않는 감 농사를 대폭 줄이고 감을 구입해 고품질 곶감을 만들어 팔며 노동력을 결집해 순수익을 극대화했다. 또 대학에서 의상디자인을 전공한 딸 혜림 씨가 카카오톡과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해 제품의 생산 과정을 진솔하게 담은 사진을 올려 소비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이를 바탕으로 전국에 2000여 명의 단골을 확보해 겨울에는 곶감, 요즘에는 꿀 구매 주문이 줄을 잇고 있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승빈 씨는 귀농을 위해 2014년 부산 귀농학교에서 예비귀농자 교육까지 받았다. 승빈 씨는 “농업에서 시장성이 있는 것을 발견해 귀농을 결심했다”며 “젊은 농업인에게 지원도 많아 부모님은 생산, 저와 동생은 마케팅으로 가족 농업경영체를 성공시키고 싶다”고 말했다. 아버지 박 씨는 “아들·딸까지 귀농시킨 것에 대해 주변 사람들의 우려가 컸지만, 매출이 늘어 지금은 모두 부러워하고 있다”며 “오는 9월에는 새로 지은 집과 창고에서 지역 농산물을 활용한 가공품을 만들어 팔면서 고객도 초대하는 6차산업을 실현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산청 = 글·사진 박영수 기자 buntl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