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지난 4일 경북 영주시 안정면 ‘소백산 꽃차 이야기’ 농원에서 이연희(왼쪽 첫 번째) 씨가 체험객들과 함께 식초를 만들기 위해 병에 담은 딸기를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 소백산 꽃차이야기 농원 이연희씨

IMF때 공장 접고 2009년 사기
3.3㎡당 6만원에 하우스땅 구입
차진 황토밭 마사토 덮기 고생

들깻잎→ 수박→ 단호박→ 황기
실험‘7전8기’끝 딸기로 성공
농막살이서 이젠 2층 목조주택

딸기수확철엔 月6회 체험행사
꽃·잎·뿌리차 만들기도 ‘인기’

억척 여성 농부의 얼굴은 햇볕에 그을려 붉게 변했지만 웃음꽃이 만발했다. 올해로 59세. 서울 토박이인 이 농부는 지난 2011년 시골로 내려와 7전8기 작물 재배 도전으로 귀농 성공 신화를 썼다. 이연희 씨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가 운영하는 경북 영주시 안정면 단촌리 ‘소백산 꽃차 이야기’라는 농원을 찾았을 때는 체험객들로 북적였다.

지난 4일 오후 2시 소백산 자락에 위치한 140㎡ 규모의 농원 체험장으로 들어서자 35명의 체험객이 딸기로 식초를 만들고 있었다. 이 씨는 “주로 딸기로 잼을 만들지만 식초로 발효시켜 탄산수와 섞어 마시면 건강음료로 제격이다”고 했다. 체험객 박태열(56) 씨는 “체험장에서 나는 시큼한 식초 냄새가 딸기 수확 기간에 동네에 진동한다”며 “이맘때면 동네마다 차량으로 가득 차서 주차 대란이 벌어진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이 씨는 딸기 수확 철(3∼5월)이면 한 달 6차례에 걸쳐 체험장을 운영한다.

앞서 체험객들은 이 씨와 남편 강성구(63) 씨가 재배 중인 1500㎡ 딸기 비닐하우스에서 딸기 따기 체험도 했다. 맘껏 따서 먹어도 되고 소쿠리에 가득 담아 가져갈 수도 있다. 이 씨는 딸기를 무농약으로 재배한다고 했다. 이 씨는 “정성을 들여야 딸기가 굵어지고 당도도 높아진다”며 “새벽 5시부터 하루 종일 딸기밭에서 산다”고 말했다. 그는 비닐하우스 뒤편 4000㎡ 밭에 야생화와 식용 국화, 녹차 등도 심어 뒀으며 연중 각종 꽃차류·잎차류·뿌리차류 만들기 체험객을 맞고 있다. 이 씨는 “내 손으로 가꾸어 자라는 것을 보는 기쁨이 그 어떤 도시생활보다 낫다”며 “적으나마 땅에서 생산물을 얻고 여러 사람이 체험하는 데 큰 만족감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이 씨의 이 같은 귀농은 벼랑 끝에서 시작됐다. 그는 1997년 외환위기 당시 17년 동안 운영했던 의류 공장을 접었다. 설상가상으로 2009년에는 남편의 건설업도 사기를 당해 내리막길을 탔다. “남편은 정신줄을 놓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사기꾼들을 찾아다니면서 바닥난 통장을 박박 긁어서 생활비를 보태 힘든 하루하루를 보냈어요.” 이 씨는 이렇게 말하며 “그 무렵 2년 동안 힘겨운 생활을 하다 잃어버린 돈 대신 남편을 구한다는 심정으로 시골로 이사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귀농 후 더 막막했다. 3.3㎡당 6만 원에 산 딸기비닐하우스 자리는 차진 황토였다. 25t 트럭 100대 분량의 마사토를 쏟아붓고 호미가 들어가는 땅으로 바꾸면서 허름한 농막 생활을 했다. 그는 “당시 3월이었는데 날씨가 그렇게 혹독하게 추울지 몰랐다”며 “잠자다가 너무 추워서 찜질방으로 피신하는 등 초창기에는 악몽이었다”고 회상했다.

그의 귀농 첫 작물 재배 시도는 병충해에 강하고 사계절 수확이 가능한 들깻잎이었다. 그러나 들깻잎은 판로 문제가 생겨 하는 수 없이 포기하고 이듬해 다시 재배한 것이 수박이었다. 그러나 이마저 푼돈도 만져보지 못했다. 그는 단호박, 국화, 황기 등 4년간 7가지 농작물과 특용작물을 재배했으나 인건비, 약재값 등으로 빚지는 농사만 지었다. 이에 평소 생각했던 비닐하우스 딸기체험장을 운영하기로 하고 충남 논산 딸기밭을 오가며 체험한 뒤 2015년부터 딸기 비닐하우스 농사를 시작했다.

현재 그의 농원에는 농막 대신 2층짜리 목조 주택과 꽃차 판매 카페, 체험장이 들어서 있다. 또 그는 농업기술센터 등에서 꽃차 등 각종 차류 재배 출장 강의도 한다. 이 씨는 “농촌에서 각종 차류 사업화에 성공해 6차산업 사업가가 됐다”며 “욕심 없이 진정으로 땅에서 즐거움을 찾으려는 후배 귀농인들과 보람을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영주 = 글·사진 박천학 기자 kobbla@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