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14일 오전 3월 임시국회 의사일정을 논의하기 위해 국회 운영위원장실에 모인 4당 원내수석부대표들이 사진을 찍기 위해 자리를 잡고 있다. 왼쪽부터 정양석 바른정당·박완주 더불어민주당·김선동 자유한국당·김관영 국민의당 원내수석부대표. 연합뉴스

③ 통합 없이 위기극복 없다

탄핵찬반 갈등의 골 깊어져
‘광장의 민심’ 역할은 마무리
정치가 협치로 마무리할 때

“정치 본질은 갈등의 조정
다가올 대선 누가 승자여도
반대편 패자까지 포용해야”

“국민의견 제대로 반영할
직접민주주의 발전 계기로
권한분산 개헌도 생각할때”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후폭풍이 가라앉지 않으며 국론 분열과 경제·안보 위기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촛불집회’로 표출된 시민 민주주의가 박 전 대통령을 권좌에서 민주적·합법적·평화적으로 끌어내렸지만, 이제는 광장의 힘이 아니라 ‘정치’라는 제도적 힘이 통합과 협치의 리더십으로 탄핵 후폭풍을 마무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번 탄핵 사태는 제왕적 대통령제 등 권력집중형 통치구도의 개선과 시민 민주주의로 나타난 직접민주주의의 효율적 실현 등 정치권이 해결해야 할 적잖은 과제를 제시했다. 개헌을 통해 새로운 민주공화정 시대를 열어야 한다는 당위성이 증명됐다는 전문가의 지적도 많다.

◇“정치 본질은 정권 획득이 아니라 갈등 조정과 협치”=우리 사회는 탄핵 찬반세력으로 갈라져 갈등의 골이 깊어질 대로 깊어졌다. 정치권도 탄핵소추안의 국회 통과과정에서 국민을 설득하는 데 소홀하면서 국론 분열에 불을 붙였다. 혹시라도 표를 잃을까 두려워 자신의 지지층에 맞춰 구호를 외쳐댔을 뿐, 통합을 위한 대안을 내놓지는 못했다. 이제라도 광장의 민심을 제도적으로 풀어내기 위해 정치권이 먼저 포용과 협치의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원로와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특히 누가 돼도 여소야대라는 점에서 견해차는 인정하되 서로 협치해야 공동체가 유지되고 민주주의도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김형준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는 14일 통화에서 “정치의 본질은 정권 획득이 아니라 갈등을 조정하는 것”이라며 “대선에서 극단과 배제의 정치가 판을 치지만, 그 사람이 승리한다고 해도 통치에선 또다시 갈기갈기 찢길 수밖에 없다. 새로운 정치 질서를 만들어내고 하나로 묶어낼 수 있는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최창렬 용인대 정치학과 교수도 “태극기집회는 일부 세력일 뿐 국민 대다수인 촛불과 대척점에 있다는 지적도 잘못됐다”면서 “이번 대선까지 양극단의 싸움을 반복하면 정말 후진적 민주주의로 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정치권은 대통령 탄핵이 촛불시위의 목적이 아니었던 만큼 개혁의 목소리를 높여 나가야 한다. 야당은 특히 극단적인 방식을 자제하고 포용과 협치의 자세를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상일 아젠다센터 대표는 “잘잘못에 대한 시비는 가리되 탄핵 사태를 초래한 세력을 단순화시켜 낙인찍기를 하지 말아야 한다”며 “그 안에도 합리적 주장이 있을 수 있고 직접적인 잘못이 없는 경우도 있는데, 보수나 집권여당이라고 낙인을 찍는 순간 이 당을 지지한 국민과도 등을 돌리겠다는 뜻이 된다”고 했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보수 정당에 대해서도 “국민 통합을 위해서라도 탄핵 결과에 승복해야 야당도 손을 내밀 수 있다”며 “이 과정에서 너무 급하게 사면 등을 거론하면 역효과를 불러올 수 있는 만큼 긴 호흡으로 대화해 가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정희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흑백논리에 오랫동안 매몰됐고 양극 목소리가 사회를 주도해 온 문화를 해소해야 한다”면서 ‘샤이 보수’ ‘샤이 중도’로 불리는 이른바 중도 보수층의 목소리가 제도권에 적극적으로 반영될 수 있도록 정치권과 학계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진영 갈등과 분열을 초래한 제왕적 대통령제를 이번 기회에 개선해야 한다는 주문도 쏟아졌다. 개헌 시기를 막론하고 현행 권력구조의 폐해가 드러난 만큼 분권과 협치를 구현할 새 권력구조 마련이 시급하다는 주장이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협치를 위해서는 상대에게 집권할 가능성을 제시해야 한다”며 “대선후보가 2020년 4월까지만 대통령직을 수행한다면서 개헌을 약속해야 더는 불행한 대통령을 만들지 않을 수 있다”고 했다.

◇“초유의 대통령 탄핵, 직접민주주의 발전 계기 돼야”=그동안 독재 권위주의 정권, 국민적 존경을 받지 못하는 소수 정치인에 의해 수동적으로 한국 정치가 끌려왔다면, 시민의 목소리가 현직 대통령 탄핵을 이뤄낸 사건을 통해 민주주의를 한 단계 발전시킬 수 있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양승함 연세대 명예교수는 “대통령 탄핵을 산업화 시대의 권위주의적인 요소, 정경유착 등 폐해를 제거하고 새 시대로 가는 하나의 발전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경유착을 끊기 위한 개혁입법을 각 당이 일제히 공언했지만, 자유한국당의 비협조와 더불어민주당의 무기력한 태도가 계속되면서 개혁입법 시기를 놓쳐버린 데 대해 정치권과 시민사회가 뼈아픈 반성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안병욱 가톨릭대 명예교수도 “말로는 민주주의였지만 국민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고 소수 정치인에 의해 농단의 대상으로 전락했는데, 이제 민주주의의 본령으로 갈 수 있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실제 정치권에서는 선거로 뽑은 사람 중 문제 있는 사람에 대해 임기가 끝나기 전 국민투표에 의해 파면시키는 국민소환제, 직접민주주의 확대를 위해 국민이 직접 법률안을 제출하는 국민발안제 등이 검토되고 있다. 박상철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는 “촛불 민심과 정치권이 ‘바통 터치’를 하기 위해 국민소환제 등의 법률이나 헌법에 촛불 민심을 반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윤희·이정우·송유근 기자 wor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