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반기업 정서 확산 여파
구조재편·M&A 미래전략 차질

미국발 신보호무역주의·중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보복·세계 시장의 저성장 장기화 등 글로벌 경영환경의 불확실성이 갈수록 고조되고 있다. 정작 이 같은 난국을 헤쳐나가는 데 요구되는 신속한 대응 전략과 뚝심을 강점으로 해 온 한국형 총수 경영 시스템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과 반기업 정서의 여파로 되레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20일 재계 등에 따르면 한국형 총수 경영의 대표적인 사례는 삼성이다. 삼성은 그동안 ‘총수-미래전략실-전문경영인’ 간의 상호 보완적인 삼각 체제와 일사불란한 속도 경영을 통해 격전지인 글로벌 시장에서 리더십을 유지해 왔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러나 총수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17일 특별검사 수사팀에 구속되고, 이건희 회장은 장기간 와병 생활을 하면서, 삼성의 삼각 경영 시스템은 붕괴위기를 맞고 있다. 사장단 인사와 투자, 고용, 지배구조 개편 등 굵직굵직한 현안 등은 현재 완전히 정지된 상태다.

삼성은 전문경영인 체재로 현상을 유지할 것으로 보이나 짧으면 수년, 길면 수십 년 뒤까지의 시장 주도권을 결정짓는 사업구조 재편, 인수·합병(M&A) 등 미래 경영 전략은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이경묵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세상이 빠르게 바뀌고 있는데 정작 5~10년 후 무엇을 할지 고민할 사람이 없어진 게 가장 큰 문제”라고 밝혔다.

문제는 총수 경영의 장점은 살리되 지배구조 개편으로 단점을 보완해야 하나, 갈수록 커지고 있는 반기업 정서의 여파로 난항이 예고되고 있다. 이와 관련, 야권은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에 속한 회사가 인적분할을 하면 자사주를 아예 소각하게 하거나 의결권 부활을 제한하는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개정안’(공정거래법)을 지난해 발의하고 본회의 상정을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이들 법안이 현실화하면 삼성, 현대·기아차, 롯데그룹 등 지배구조 개편은 ‘물 건너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병기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국내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은 선택과 집중을 통한 사업재편에 따라 판가름날 것”이라며 “주주 민주주의에만 기초한 기업지배구조 개편은 기업가 정신과 혁신, 기업의 장기 성장을 위태롭게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관범 기자 frog72@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