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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성열 전국부장

우리나라 지방자치 역사가 곧 3세대로 접어들 모양이다. 1952∼1960년 단명 지방자치 시기를 1세대, 1991년 지방의원 선거와 1995년 단체장까지 포함한 첫 전국 동시 지방선거로 이른바 지방자치 부활을 이룬 시점부터 현재까지를 2세대로 구분해보자. 그렇다면 탄핵 인용을 전제로 몇 개월 후 봄 대선으로 출범할 새 정부의 지방자치 정책은 3세대라 불러도 무방할 듯싶다. 이런 세대적 진화는 제왕적 대통령의 폐해를 절감한 국민이 분권과 협치를 시대정신으로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분권은 대통령과 총리, 혹은 행정부와 입법부의 수평적 분권 외에 중앙과 지방의 공간적 분권을 포함한다.

3세대 지방자치가 이전 세대와 가장 달라질 부분은 헌법상의 명문규정을 통해 실질적 자치권을 보장받으려는 점이다. ‘∼는 법률로 정한다’고 하위법에 위임한 117조, 118조 달랑 2개의 조문만으로 70년 가까이 버텨온 헌법에 지방분권 조문을 대폭 늘리자는 게 분권 개헌론자들의 주장이다. 당장 손에 잡히는 시안은 전국 광역·기초단체장 및 의회 협의회가 지난 2015년 내놓은 지방분권형 개헌 연구보고서다. 전문과 총강부터 기본권·통치구조·권력분립에 이르기까지 광폭의 조문 첨삭을 가하자는 적극적 개헌안이다. 성년 스무 살을 넘긴 지방자치 현장의 목소리에 충실한 제안이지만 실현 가능성은 낮다. 지역대표형 참의원을 신설하자는 양원제 조항만 봐도 국민적 합의에 이르기 쉽지 않아 보인다.

최근 대선 후보 지지도에서 1, 2위를 달리고 있는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안희정 충남지사는 헌법개정 시 지방분권을 반드시 넣겠다고 약속했다. 3위인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의 입장은 아직 모르겠지만 현·전직 지방자치단체장인 이재명 성남시장과 손학규 국민주권개혁회의 의장은 물론,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나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도 지방분권형 개헌의 원론적인 찬성론자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지방분권의 구체적 방법론은 오리무중이다. 문 전 대표는 이틀 전 “세종시 국회분원을 설치하고, 행정자치부와 미래창조과학부도 이전하겠다”고 했다. 노무현 지방자치연구소 사무국장 출신인 안 지사는 “자치경찰권까지 가진 기초 생활 정부에 다양한 지방자치 모델을 선택할 자유를 줘야 한다”고 한다. 황 총리의 지휘를 받는 행정자치부도 복지허브화 등 행정체계 개편을 실험 중이다. 다른 후보들도 모호하거나 파편적인 자치분권 구상은 밝힌적이 있다.

그러나 이 정도의 지방자치 3.0 모델로 세대 진화는 요원하다. 한건주의 이벤트 냄새마저 솔솔 풍긴다. 자치분권, 분권형 개헌을 정치 구호로 외치긴 쉽다. 나누자, 함께하자는 정신에는 다들 공감하니까. 하지만 정부로부터의 재정 독립은 어떻게 시켜줄 건지, 입법권과 사법권을 좀 더 떼어준다면 어디까지 나눌 건지, 중앙과 지방과의 충돌은 무슨 제도로 해결할 건지, 납득할 만한 청사진을 하루바삐 공약으로 보고 싶다. 이 글을 쓰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최종 답안을 입수하려 백방 애썼으나 속수무책이었다. 언론인도 이리 답답한데, 정치 소비자들은 깜깜이 쇼핑에 사기당하는 기분 아닐까.

nos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