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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완진 서울대 교수·경제학

이번 겨울에 캐나다에 거주하는 조카 집을 방문했는데, 서양과 우리나라의 육아법상 흥미로운 차이를 경험할 수 있었다. 40대 초반의 이민 2세 부부가 두 살과 네 살짜리 두 아들을 키우는데, 식사 시간에 두 살 난 아들에게 식탁에 음식을 놓고 수저를 쥐여주고는 식사가 끝날 때까지 그대로 혼자 내버려 두는 것이 신기했다. 식사 후에는 마당에서 혼자 뒤뚱거리며 노는 것이 좀 위험해 보이는데도 젊은 부부는 아이를 그대로 두는 것이었다. 또 네 살 난 형이 동생의 장난감을 뺏어가자 부모는 동생에게 사과할 때까지 조용하지만 단호하게 벌을 주는 것이었다. 우리는 이와 얼마나 다른가?

여기서 우리는 근본적인 가치관의 차이를 본다. 서양에서는 비록 어린아이라도 개인의 생각과 의견을 존중하고 자유와 권리를 중시한다. 그리고 자유에 따른 책임을 질 줄 아는 자유롭고 독립적인 인간을 가치 있게 생각하는 반면, 우리나라는 아이의 장래 성공과 복지를 더 중요시한다. 건강을 위해서는 아이의 기분이나 감정을 무시하고 억지로라도 먹여야 하고, 부모가 생각하는 아이의 성공을 위해서 강제로라도 훈련하고 공부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 아이는 내버려두면 나쁜 길로 가거나 게을러질 것이 분명하므로 어릴 때부터 보호받아야 하고, 부모의 가치관대로 조형될 수 있는 존재라는 인간관이 그 배경에 있다. 이뿐만 아니라 좋은 학교 다니고 좋은 직장 얻고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물질적으로 잘사는 것이 인생의 공통된 목표라는 획일적인 가치관이 우리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 건 아닌가?

과도한 입시 경쟁과 사교육비 부담, 대학 서열화와 학벌주의, 주입식 교육에 메말라가는 창의성과 행복감, 이 모든 교육의 근본적 문제를 해결할 방안이 수없이 제시되고 시도됐지만 항상 제자리걸음인 것은 바로 이런 근본적인 가치관 때문이 아닐까?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입시제도 개혁을 시도했지만, 그 성과가 미미했다는 것은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교육의 백년대계를 위해서는 가치관의 변혁이 필요하다. 논어의 첫 구절과 같이 새로운 것을 배우는 데서 기쁨을 느끼는 것은 모든 인간의 공통적인 본성이다. 단지 좋은 학교에 가기 위해 관심도, 호기심도 없는 과목을 공부할 때 창의성은 사라지고 권태와 불행만이 남게 될 것이다.

영국의 자유주의자 존 스튜어트 밀은 고전적인 명저 ‘자유론’에서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 자유로운 개성의 추구에 있음을 설득력 있게 제시했다. 국민 주권의 정치적 자유도 중요하지만, 여론을 앞세워 개인의 생각과 자기결정권을 억압하는 여론의 압제(壓制)와 다수의 횡포(橫暴)야말로 사회의 자유로운 발전을 가로막는 최대의 장애물이라고 보았다. 우리 사회는 정치적인 민주화를 이뤘지만 여론이라는 이름으로 개인의 창의성과 개성을 억압하는 횡포는 여전하다. 무엇보다 여론과 민심이 요구하면 각종 간섭과 규제도 정당하다는 생각이 정치지도자들 사이에 팽배해 있는 게 문제다.

우리나라가 단기간에 비약적인 경제 발전을 이루었고, 정치적으로 민주주의를 이뤄낸 것은 매우 자랑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그에 걸맞은 관행과 제도, 가치관은 아직 확립되지 못한 데서 모든 문제가 연유한다. 창의적이고 도덕적인 인재 양성을 위한 교육 개혁, 기업가 정신과 혁신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성장동력의 개발, 복지 체계 확립을 통한 불평등 완화, 모두가 함께 잘사는 행복한 사회 건설…. 요즘 한층 바빠지기 시작한 대선 주자들이 내세우는 이 모든 공약은 참으로 바람직한 우리 모두의 꿈이다.

그러나 이러한 꿈의 실현을 위해 무엇보다 먼저, 경쟁 상대방을 존중하고 가치관과 견해의 차이를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기업가는 돈벌이에 앞서 사회에 어떻게 가치를 창출할 것인지를 먼저 생각해야 하고, 개개인은 물질적 성공보다 자신의 개성과 가치를 실현하는 데 인생의 목적을 두는 성숙한 가치관을 확립해야 한다. 국가와 정부는 개인의 개성과 창의성이 최대한 발휘되도록 권위주의적 개입과 간섭을 최소화해야 할 것이다. 경제 개발을 위한 관치 경제가 과거의 극복 대상이었다면, 이제 사회 복지와 정의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간섭과 규제야말로 경계해야 할 것이다. 선진국 수준에 도달한 하드웨어를 운용할 소프트웨어인 제도와 의식의 혁신이 요구되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