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경찰 탑승못해 출동안해

지난 설 연휴 부산으로 여행을 간 20대 대학원생 이모 씨는 1월 31일 오후 11시 부산발 수서행 SRT(수서발 고속열차)에 탔다가 끔찍한 경험을 했다. 같은 칸에 탔던 만취 상태의 50대 남성이 부산에서 서울까지 가는 2시간 20분 내내 승무원과 수십 명의 승객에게 욕설을 퍼붓고 의자를 발로 걷어차며 난동을 부린 탓이다.

이 씨는 승무원에게 소란을 피우는 남성을 좀 말려달라고 요청했지만 승무원은 “조용히 해달라”고 구두로 주의를 줬을 뿐, 더 이상의 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다른 칸으로 이동했다. 이 과정에서 이 남성이 승무원에게 삿대질하며 폭언을 쏟아내도 별다른 제지가 없었다.

더 황당한 것은 참다못한 이 씨가 112에 신고했지만 출동하겠다던 철도경찰이 “열차를 놓쳐 탑승하지 못했다”는 소리를 늘어놓더니 결국 종착역인 수서역까지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씨는 “만취 남성 때문에 승객들 대부분이 정말 힘들고 불안한 여정을 보냈다”며 “흉기라도 소지했으면 어떻게 됐을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고 말했다.

국토교통부가 지난 1월 25일 연간 100건 안팎에 달하는 철도 내 난동에 무관용 대처한다는 방침을 발표했으나 이처럼 열차 내 폭언·폭행에 관한 대처는 여전히 느슨한 실정이다. 국토부는 지난해 말 벌어진 대한항공 기내 난동 사태를 계기로 사법경찰 업무를 수행하는 철도경찰과 승무원 등 철도종사자에 대한 직무집행 방해 행위를 엄정히 처벌하도록 검찰 등 관계기관과 협의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국토부는 “고속열차의 경우 시속 300㎞ 이상으로 달리기 때문에 난동에 소극적으로 대응할 경우 철도안전에 위협이 되고 2차 사고까지 우려된다”고 했었다.

철도안전법은 ‘폭행·협박으로 철도종사자의 직무집행을 방해할 경우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처벌 수위는 불구속 수사나 기소유예, 벌금형 등으로 낮다.

박수진 기자 sujininva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