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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영 한국외국어대 교수 중국정치경제학

사드 배치를 둘러싼 국내외적 혼란이 갈수록 태산이다. 16일 국방부 대변인이 정례 브리핑에서 이달 안에 롯데그룹과 체결 예정이던 부지 교환 계획이 늦춰질 가능성이 있음을 밝힘으로써 사드 배치 자체가 정부 계획대로 안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사드 부지 제공 문제로 현지에서 중국의 다양한 제재를 받고 있는 롯데 측이 향후 중국 시장에서의 사업에 부담을 느껴 지체되는 것으로 보인다. 한 기업이 감당하기에 사드는 너무 무거운 짐이지만 이로 인해 차질이 생겨서는 안 될 일이다.

중국은 ‘북핵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라는 우리 정부의 입장에 아랑곳하지 않고 일방적인 배치 철회를 계속 요구하고 있다. 이에 따른 보복으로 보이는 조치들이 전방위로 확산되고 있지만, 국정 공백이라는 특수 상황에서 최소한의 대응도 못 하는 형국이다. 여기에 국내 대선 주자들마저 조기 선거를 의식해 각자 정제되지 않은 의견을 제시하면서 ‘사드 논란’이 대선 주제로 확산되는 정치적 혼란까지 가중되고 있다.

사드 배치 결정 과정에서 국민과의 소통이 부족했다는 아쉬움이 있긴 하다. 하지만 사드 배치는 국가 안보와 관련해 정부가 결정한 안보정책 사안이다. 따라서 이미 결정된 정책의 재론은 전혀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으며 사회 혼란만 가중시킬 뿐이다. 사드 배치가 논란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은 사드 배치의 본질인 북핵 문제에 대한 해결과 처리가 우선돼야 하기 때문이다. 점증하는 북핵과 미사일 위협이 사라지지 않는 상황에서 방어 수단인 사드 문제가 논의의 대상이 되는 것은 본말이 전도(顚倒)된 것이다.

첫째, 사드 배치는 한국 정부가 일방적으로 취소할 수 없는 한·미 동맹 간의 합의 사항이다. 물론 필요한 경우 얼마든지 재론도 가능하지만 북핵 위협이 점증하는 상황에서 근거 없이 사드 배치를 재론할 수는 없다. 사드 배치를 강력히 반대하는 중국의 논리와 우려도 이해할 수는 있고, 안정적인 우호협력 관계 유지도 중요하다. 하지만 이 때문에 한·미 동맹이 훼손돼선 안 될 일이다. 중국만 두렵고 미국은 아무래도 괜찮은 나라인지도 냉정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둘째, 주권국가인 대한민국이 제3국의 어떤 압박이나, 또는 향후 가중될 압박이 두려워 이미 국가가 결정한 사항을 철회하거나 취소하는 것은 스스로 국격을 떨어뜨리는 행위다. 국정 공백 사태로 외교적 어려움을 겪고 있고, 주변 강국들이 강성 정치인(strong man)시대를 맞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은 문제가 생길 때마다 압박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잘못된 메시지를 주변 강국에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셋째, 안타깝게도 북한은 핵(核) 보유 의지나 미사일 개발을 중단할 생각이 추호도 없는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은 신년사에서 북한이 ‘동방의 핵강국, 군사강국’이 됐다고 강조했고, 조선중앙통신은 지도자의 결정에 따라 임의의 시간과 장소에서 대륙간탄도탄(ICBM)이 발사될 것이라며 위협을 계속하고 있다. 대한민국에 어떤 정부, 어떤 지도자가 탄생하든 북한의 핵 위협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북핵 해결에 대한 최소한의 진전도 없는 상태에서 본질 문제에 대한 논의 없는 사드 논쟁은 국력 낭비다.

일단 결정된 일은 해당 본질 문제에 근본적 변화가 생겨 원인 무효가 되기 전에는 정해진 프로세스에 따라 진행되는 게 맞다. 엄중한 국가안보 상황이 더는 정쟁의 도구가 돼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