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속 음주 장면은 우리에게 친숙하다. TV 예능 프로그램과 드라마를 보면 음주는 빈번히 소환되는 주제이다. 연예인이 자신의 주량을 자랑하기도 하고 서로 경쟁적으로 음주 무용담을 늘어놓거나 진행자가 이것을 유도하는 식이다. 드라마는 더하다. 극의 흐름과 상관없이 기쁘거나 슬플 때 모두 음주나 만취 장면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특히 고성방가 등의 음주 추태는 여과 없이 전파를 타는 경우가 많다. 영화도 수위가 높다는 게 다를 뿐 큰 차이가 없다.

주량 자랑과 무용담 경쟁 그리고 음주 추태가 걸러지지 않고 시청자에게 전달되는데도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유독 흡연에 대해서만 엄격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청소년 모방이 우려된다고 하지만 음주도 모방 위험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주량과 음주 무용담은 음주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심어준다. 방송으로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고성방가와 주폭(酒暴) 등의 음주 추태에 무비판적으로 노출되면 사회적 일탈과 범죄를 판별하는 집단 윤리의식이 약화된다. 무뎌진 의식에 따른 피해는 공동체 구성원 모두의 몫이다. 미디어 속 음주를 바라보는 날카로운 시선이 필요하다.

최시영·전 연세국제평론 부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