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 현장을 가다 - ① 독일·영국은 지금

세계적으로 순식간에 눈앞에 다가올 것으로 예상되는 4차 산업혁명을 준비하는 방안은 나라마다 다르다. ‘히든 챔피언’으로 유명한 독일은 강한 제조업을 기반으로 스마트공장을 대표로 한 ‘인더스트리 4.0’을 추진하고 있고, 금융 강국 영국은 정보기술(IT) 기반의 핀테크 등 스타트업 육성이 한창이다. 최근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으로 우리나라 ‘창조경제’ 정책의 빛이 바래는 결과를 빚고 있지만, 이럴 때일수록 미래의 변화를 예측하고 대비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 엄청난 속도로 산업 지형 자체가 변하는 4차 산업혁명 시기, 한순간의 실기(失期)로 인해 만회할 수 없는 후진국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독일과 영국의 4차 산업혁명 준비 현장을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둘러봤다.

이미지 크게보기 독일 암베르크 지멘스 공장에서 한 직원이 스마트팩토리 단말기 앞에서 일하고 있는 모습. 지멘스 제공

- 독일 ‘지멘스’
‘만들면 알아서 사간다’ 생각서
‘소비자 요구대로 만들자’ 혁신
全과정 네트워크화 생산량 껑충

독일 지멘스의 암베르크 공장은 ‘스마트팩토리’의 전형으로 유명하다. 1989년 설립된 이후 같은 생산면적과 노동력으로 생산량을 9배로 끌어올리는 성과를 거뒀다. 해마다 1500만 개의 산업용 PC 제품을 생산하는데, 단순하게 평균을 내면 2초마다 1대씩 제품이 만들어지는 셈이다. 불량률은 10만 개당 1.1개꼴. 99.9989%의 정확도다.

산업용 PC 컨트롤러 약 1000개가 생산부터 배송까지 가동되는데, 24시간 안에 전 세계 6만 고객에게 배송될 제품을 생산한다. 부품 자동화 수송 시스템으로 소재를 창고에서 기계까지 이송하는 데 15분밖에 안 걸린다. 이 모든 것이 암베르크 공장이 자랑하는 수치들이다.

지난 11월 11일 독일 뮌헨 지멘스 본사에서 만난 게르하르트 포크바인 지멘스 디지털화 담당 이사는 “미래 시장에서는 과거처럼 대량 생산해서 시장에 내놓고 ‘필요한 사람이 알아서 사가라’고 하는 것보다 소비자가 원하는 것을 만들어야 한다”면서 “소비자 요구에 따라 생산 라인 구조도 달라져야 하는데, 이를 위해 만들어진 게 스마트팩토리”라고 설명했다.

미래 시장은 개발·생산·사용의 각 단계가 밀접한 영향을 주고받는 만큼, 이에 맞게 생산 과정도 달라져야 한다는 것. 그는 “지멘스는 모든 과정을 네트워크로 연결해 효율과 속도를 높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포크바인 이사는 “세계의 많은 기업이 디지털화할 수 있도록 돕고, 제품 개발뿐만 아니라 생산과 판매 라인까지 디지털화해 경쟁력을 갖추도록 하는 게 지멘스의 목적”이라고 말했다.

이미지 크게보기 독일 뮌헨 BMW 공장에서 한 직원이 스마트워치를 통해 작업 지시사항을 전달받고 있다. BMW 제공

- 독일 ‘BMW’
스마트 워치로 주문사항 전송
조립과정 실수는 로봇이 점검
제작 공정 끊임없이 디지털화

지난 11월 11일 방문한 독일 뮌헨의 BMW 공장. 차체 제작 공정에 840대가량의 로봇이 각자 맡은 역할대로 척척 용접 작업을 하고 있었다.

안내를 맡은 아드레안 슈미트 씨는 “자동화된 공정 덕분에 1개 라인에서 4개 모델의 생산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조립 공정에서는 로봇이 부품을 들어줘 조립을 편리하게 해 줬다. 도색도 4개의 로봇 팔이 자동으로 차량 문을 열어가며 색을 꼼꼼히 입혔다. 로봇 팔이 차량 문을 열어주는 것을 빗대어 ‘젠틀맨’이라고 부른다.

여기까지는 일반적인 자동차 조립 공정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이 공장에서는 작업자들이 스마트워치를 활용한다. 지난해 8월 시범 도입됐다. 슈미트 씨는 “BMW4시리즈의 특별 주문 사항을 작업자에게 스마트워치로 알려줘 작업자가 이를 참고해 작업할 수 있다”고 말했다.

조립이 이뤄지는 공장 라인 하단에 문어 빨판처럼 생긴 조명기구와 카메라가 달려 차체 이곳저곳을 들여다보는 로봇도 눈에 띄었다. 이 로봇은 조립 중인 차체에서 조립 부분이 빠진 곳이 있는지 점검해 모니터에 떠 있는 도면에 표시해준다. 녹색과 붉은색으로 선명하게 표시하기 때문에 작업자는 금방 조립이 빠진 곳을 발견할 수 있다. 이 공장이 위치한 뮌헨의 남쪽 바커스도르프의 BMW 물류공장에는 자율주행 로봇 카트가 시범 운영되고 있다. 모두 작업 효율을 높이기 위한 정보기술을 생산 공정에 적용한 사례다. 슈미트 씨는 “제작 공정에서 디지털화가 끊임없이 진행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미지 크게보기 영국 런던 카나리워프에 있는 스타트업 육성기관 ‘레벨39’에서 창업가들이 일하고 있다.

- 영국 ‘레벨39’
신도시에 세운 스타트업 산실
핀테크 등 230여개 업체 입주
전세계 전문가와 소통이 장점

영국 런던 신도시 카나리워프 지역에 있는 스타트업 육성기관 ‘레벨39’에는 한국 핀테크 스타트업 10곳이 입주했거나 입주할 예정이다. 스마트폰에 신분증 사진과 수기 서명을 등록해 놓으면 금융 거래 본인 확인 때 스마트폰 카메라로 ‘셀카’를 찍고 스마트폰 화면에 서명하는 식으로 본인 인증을 할 수 있는 기술을 보유한 KTB솔루션도 입주업체 중 하나다.

지난 11월 9일 레벨39에서 만난 김태현 KTB솔루션 수석연구원은 “자유롭게 전 세계 스타트업 관계자들과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장점이 매력적”이라며 “한 터키 사람에게 기술을 설명했더니 금융권뿐 아니라 시민들의 신분 인증에도 도움이 되겠다는 의견을 얘기해 사업 모델이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레벨39에는 사업설명회를 할 수 있는 ‘스페이스39’,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업무를 하거나 차를 즐기며 토론할 수 있는 ‘펜트리’ 등을 갖추고 있다. 비즈니스미팅 등을 위한 ‘라운지39’도 있다. 한결같이 자유로운 분위기가 특징이다.

레벨39는 과거 아시아계나 난민들이 모여 살던 곳을 1980년대 후반에 금융업무지구로 개발하면서 고층 빌딩이 들어섰고, 지금은 HSBC, 씨티은행, JP모건 등 글로벌 금융사들이 자리 잡은 신도시가 됐다. 이 도심 한복판 50층짜리 원캐나다스퀘어의 39층에 있는 스타트업 육성기관이어서 레벨39라고 이름 지어졌다. 레벨39는 엑센트리(Xntree)라는 액셀러레이터가 스타트업들을 지원하고 있다. 현재 핀테크와 스마트시티 분야 스타트업 230여 개가 입주해있다.

뮌헨·런던 = 글·사진 장석범 기자 bu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