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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재 연세대 교수·행정학

P 선배께.

오랜만입니다. 선배께서 공직을 떠난 이후 참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성난 촛불 민심과 탄핵 정국을 어떻게 바라보셨나요? 개인의 입신양명보다는 구체적인 정책을 통해 국가에 봉사하기 위해 행정고시를 택했다고 힘주어 말하던 선배가 새삼 기억납니다.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의 큰 바위에 새겨진 ‘내 일생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라는 글귀를 뭉클거리는 가슴에 담고 공직을 수행했으리라 믿습니다. 정권교체기마다 개혁과 혁신이라는 이름 아래 공무원이 동네북이 되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던 모습도 눈에 선합니다. 공무원의 선택을 자랑스러워했지만 아이에게는 공무원을 권하지 않겠다던 선배의 말에서 변화의 기로에 서 있는 공직사회를 보았습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에 대해 분통이 터지면서도 몸을 사릴 수밖에 없는 후배들을 보면 가슴이 아프시죠? 와중에 조류인플루엔자(AI)를 초기에 대응하지 못해 허둥대는 모습이 슬픈 우리의 자화상입니다. 이제 정치와 행정이 바로 서야 할 시간입니다. 오늘의 위기는 내일을 위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골든타임입니다. 능력을 인정받던 선배님이 따뜻한(?) 공직의 둥지를 박차고 차디찬 현실정치에 참여한다는 소식에 기대와 걱정이 엇갈렸습니다. 촛불 민심을 직시하되 당면한 난제를 외면하지 않는 지혜로운 정치가 필요합니다. 사법고시 대신 행정고시를 택했던 초심을 기억하면서 반칙과 특권에 맞서는 정치를 하시기 바랍니다.

L 과장에게.

반갑습니다. 요즘 정치권이 엉망진창으로 헝클어진 상태이니 공무원들도 편치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탄핵 혼란의 궁극적인 책임은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권에 있지만 공무원에 대한 따가운 시선을 피해갈 수는 없을 겁니다. 소신이 강하면 정치적인 통제가 먹히지 않는 관료라고 질타당하고, 정치권에 무작정 순응하면 ‘영혼이 없는 공무원’이라고 욕먹는 현실에 자괴감도 느낄 겁니다. 정치적 중립성을 협의로 해석할 경우, 공무원의 정책적 판단을 제한하는 기제로 자칫 남용될 수 있다는 생각에 동감합니다. 공무원의 생존을 위한 자발적인 정치화와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지나친 요구가 빚어낸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미래사회가 필요로 하는 비판적이고 전략적인 사고를 갖춘 공무원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공무원의 중립성과 건강한 정책적 판단이 양립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나치시대의 공무원 행태를 연구하면서 관료의 몰가치적·무비판적 행태를 신랄하게 비판한 ‘행정악마의 가면을 벗기며’(Unmasking Administrative Evil)라는 책이 주는 의미가 큽니다. L 과장처럼 정부와 공무원의 역할을 끊임없이 고민하며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공무원들이 있어 든든합니다. 정치적 중립성은 유지하되 소신 있게 세밀한 정책적 판단을 내리는 멋진 공직자의 모습을 기대합니다.

M 양에게.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걸 축하한다. 네가 자랑스럽다. 다른 합격생들과 축하 케이크를 나눌 때, 시험 준비를 위해 포기했던 소중한 시간을 넘어선 네 웃음을 볼 수 있어 기뻤다. 어느 부처에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 미리 생각해둔 ‘준비된 공무원’ 같아 뿌듯했단다. 최순실 게이트 청문회를 보면 드러난 문제는 너무 많은데 책임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현실이 답답하지? 네가 공무원이 되면 행정(行政)이란 행(幸)복하고 정(情)이 넘치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라던 내 말을 기억해주길 바란다. 미래사회가 요구하는 공공성(公共性)은 네 선배 공직자들이 추구하던 것과는 매우 다를 게다. 공공성엔 두 가지 영역이 있단다. 국가와 관료가 주체가 되는 공(公)적인 영역과 공동체와 시민이 주체가 되는 공(共)적인 영역이다. 과거 네 선배들은 국가와 관료가 함께 깃발을 들고 우리 사회를 주도했던 공(公)적 역할에 충실했단다. 따지고 보면 나름대로 공과(功過)가 있었다. 너는 선배의 열정과 긍지는 배우되 새로운 방식으로 일을 해야 할 거야. 국가가 사회를 주도하기보다는 시민과 함께 호흡하는 공(共)적 역할을 확대해 진정한 공공성을 완성할 수 있도록 노력해주길 바란다. 앞으로 열정과 공감 그리고 강직함을 갖춘 새로운 공(共)직자의 모습으로 선배 공(公)직자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 주렴. 올겨울은 춥겠지만 새 희망을 품고 봄을 기다려 보련다.